종교와 철학 (행 17:22~31, 벧전 3:13~22, 요 14:15~21)
2023.05.14. 부활절 여섯째 주일, 광주민중항쟁 기념 주일.
[믿음으로 역사를 산다는 것은? / 요한복음 14장 15~21절]
광주민중항쟁 43주년을 맞아 ‘기념 주일’로 예배드리지만, 무엇을 기념하자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3년 전 4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교단에서는 보수화된 교계 현실을 우려하며, ‘5·18의 신학’을 정립하려는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동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를 우리 교회 예배당에서 발표했습니다. 코로나 기간이라 유튜브로 진행한 그 내용을 나중에 「교단 회보」 특별호로 인쇄하여 전국교회에 배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교단 총회에서, “광주항쟁과 기장 교회의 5·18 신학”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채택하고, 50주년이 되는 해까지 ‘신학편’과 ‘역사편’의 두 권의 책으로 완성하기로 하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3년 전 발표를 맡은 저의 문제의식은, ‘5·18’을 기억으로만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가 성찰과 참회의 계기로 삼고, 역사를 살아가는 믿음의 좌표를 설정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은, 광주항쟁을 기념하는 활동이 국가의 공식행사가 되어가면서, ‘5·18’이라는 상징과 기능이 현실 정치에서는 마치 ‘권력 담론’처럼 작동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1997년), 기념공원이 국립묘지로 승격(2002년)되었어도, 진실을 다 밝히지 못했고, 권력의 퇴행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는 것도, 단지 과거의 영웅적 ‘저항’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낡아가는 옷을 벗겨내고, 앞으로의 역사를 밝혀줄 ‘진리’의 목소리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긍지가 솟구치는 삶의 전성기가 있습니다. 우리 향린교회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경험한 교회의 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저에게는 1980년대 초반 고등부 시절 광주 계림교회를 다닐 때입니다. 오백여 명 되는 규모의 그 교회는, 시민학살로 막을 내린 광주항쟁의 무거운 충격을 믿음으로 이겨내며 공동체를 꾸려갔습니다. 우리는 주일예배를 마치면 가까운 광주고등학교에 가서 야구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한편으로는 광주항쟁을 경험한 대학부 선배들의 영향으로 의식 있는 신앙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기도 했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 준비 찬양은 김민기의 노래를 불렀고, 1년에 한 번 하는 ‘문학의 밤’에는 ‘금관의 예수’를 연극에 올리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대학부 선배 김종률을 초대하여 그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저의 선친의 영향도 있었다고 봅니다. 강진에서 목회하다가 신군부에 의해 구속되기도 했던 선친은, 광주항쟁 1주기 때 전국에서 모인 칠백여 명의 기독 청년들이 금남로까지 행진한 그 교회에 부임하여 섬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광주에서 청년문화 운동을 하고 있던 소설가 황석영 님이 몇 년 전 회고록을 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 아버지의 유품으로 보았던 쪽지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12명의 감옥 동기와 함께 서명한 ‘결의서’였습니다. 거기에는 “전원 석방 아니면 다 같이 구속 투쟁하기로 서약 서명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11번째 서명자는 김경식이고, 12번째 서명자는 황석영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박정희가 죽고 공백기를 틈탄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전국에 예비검속을 하여 진보 인사들을 잡아들였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상무대 군 영창에 수감 되었는데, 함께 갇힌 황석영은 그 책에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광주 인사들은 두세 명씩 나뉘어 각 방에 배치되어, 한 달 남짓 갇혀 있어야 했다. 나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깐깐한 목사와 한방에 들어갔는데, 나와 같은 방에 들어간 목사는 강진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으며,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결행하자 항의한다며 서울까지 도보로 걸어 올라간 사람이었다.” ([수인 2], 372-3)
이런 목사를 아버지로 두었으니, 저의 신앙과 신학은 이미 정해졌다고도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적인 기독교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보수적이지만, 신학과 실천은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수 신앙에 맞는 보수 신학이 있고, 진보신앙에 맞는 진보신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하기만 하면, 둘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보수적인 신앙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고자’ 하는 신앙이라면, 진보적인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신앙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독선이 빚어내는 착각입니다. 자신이 머문 곳에 하나님이 있다고 착각하는 보수 신앙, 또한 자신이 나간 곳에 하나님이 있다고 착각하는 진보신앙이 문제입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 관한 신학적 분별입니다.
독일에서 나치가 득세하여 교회를 볼모로 잡을 때, 히틀러를 찬양한 ‘제국교회’에 반대하며 ‘고백교회’ 운동을 펼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 손에는 신문을, 한 손에는 성경을!” 시대정신을 분별하면서도, 정치에 함몰되지 않는 신앙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봅니다. ‘5·18’의 정신을 기념하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고통의 시대에 부활을 심은 예수의 약속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본문 20~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진리의 영과 함께 사는 삶을 알려줍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시대정신을 체득한 신학 지성을 배워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앙의 신비를 겸비해야 합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사도행전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바울이 증언하고자 한 것은? / 사도행전 17장 22~31절]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바울은 유럽의 관문인 마케도니아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를 지나, 당시 정신문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당시 철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는 기독교와 헬레니즘 문명이 본격적으로 만난 사건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결과만 보면, 바울의 대화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종교와 철학’이 어떤 점에서 만나는지, 목표는 같은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16절을 보면, 바울이 아테네의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넘겨짚어서 기독교가 아니면 모두 우상숭배라고 해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좋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따르면 우상이라는 식의 생각은, 유치함을 넘어서 치사한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 우상을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학도 우주론을 다룬 플라톤의 ‘티메이우스’와 서양철학의 토대를 놓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메타피직스’를 참고합니다. 기독교인도 아테네 여행을 가서 파르테논 신전을 둘러보며 옛 문화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 너머의 것을 추구합니다. 종교는 철학을 배격하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가는 곳에서 구축됩니다. 신앙인은 단순히 지성인이나 문화인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보다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바울이 만나서 논쟁한 사람은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였습니다(18절). 이 두 철학은 인간의 정신이 뻗어 나가는 서로 다른 두 방향을 대변하는 사상이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욕망을 끊고 내면의 가치에 주목하였고, 에피쿠로스 철학은 쾌락을 누리려는 인간의 욕망을 살펴보며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겉으로 드러난 명성이 아니라 내면적 품위를 중요시했습니다. 소유나 향락을 향한 욕망과 격정에서 벗어나서, 부동심(apatheia)을 갖고 양심을 지키려는 스토아의 기질은 중요한 정신입니다. 반면, 삶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끝없는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마음이 어지럽지 않도록 절제를 통해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 에피쿠로스 철학도 고상한 삶을 향한 인간 정신의 기질을 보여줍니다. 둘 다 진지한 사상입니다.
바울은 이 두 철학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설명이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의 주장은 그리스 철학이 수백 년간 말해온 것과 몇 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의 ‘종교심’에 관한 것입니다. 22~23절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δεισιδαιμονεστέρους, very religious).”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 중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이 표현은 아테네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신을 모르는 무신론자였다고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당시 그리스 철학은 태생적으로 유신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경구는 인간의 한계를 안 철학의 지혜였고, 그의 제자들이 세운 아카데미는 신을 섬기는 성소이기도 했습니다. 근대과학의 시대를 지나기까지 유럽의 정신은 유신론적이었고, 그들의 언어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은 ‘신 앞에 바로 선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바울은 24~27절까지 자신의 신학을 설명하는데, 그것 역시 그리스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주 창조자로서의 하나님, 그는 신전에 갇혀서 사람의 섬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요,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으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설명 역시 그리스 철학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28절에서 그것을 가리켜,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다’ 하고 말한바”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시인은 그와 동향 사람인 아라토스(bc 270년경의 철학자)로서, 바울은 그가 지은 「파이노메나」(Phainomena)에서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자신의 언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ζάω, live), 움직이고(κινέω, move), 존재하고(εἰμί, exist) 있습니다.” 바울의 이 설명은, 오늘날의 세속적인 문화에 사는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어도,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생각은 아테네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신앙과 아테네의 철학이 엇갈린 곳은 그다음부터입니다. 30~3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지의 시대에는 그대로 지나치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무지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 우상숭배인지조차 모르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하는 시대입니다. 바울은 이런 ‘무지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드는 길을 예수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그것은 메타노이아(μετανοῖα),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회개를 말하자, 그리스 철학과 충돌하게 됩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명료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세계의 질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철학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 이 세계(오이쿠메네)가 하나님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코스모스’(κόσμος)라고 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계는 신의 질서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정의로운 세계이며, 따라서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치 않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세계가 ‘하나님의 정의(δικαιοσύνῃ)’에 의해서 심판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 심판은 불의한 질서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의 부활을 통해서 ‘증거’(πίστιν)를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동행하며 삶의 방식을 바꾸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증언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시고, 부활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에 대한 ‘확신’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철학과 종교가 맞서는 지점에 도달합니다.
바울은 철학을 배척하지 않지만, 철학만을 반복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종교의 포교 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틀이 됩니다.
바울의 이 심정을 잘 표현한 것이 함석헌 선생의 “생활철학”이라는 글에 나옵니다. 이렇습니다. “종교와 철학이 따로가 아닙니다. 종교도 절대자를 찾는 것, 철학도 절대자를 찾는 것입니다. 철학을 따져 올라가면 믿음에 이르는 것이고, 반대로 참믿음 있으면 반드시 철학이 나올 것입니다. 철학을 반대하는 종교, 아무 뜻 모르고 맹신하는 종교, 그것은 미신입니다. 또 종교 반대하는 철학, 생명의 뚜렷한 빛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이론, 사색 그것은 빈말뿐입니다.” ([함석헌 저작집], 13:72)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 베드로전서 3장 13~22절]
교회 역사가인 아돌프 하르낙이 아테네에서 나눈 바울의 이 대화를 가리켜, ‘사도행전의 정점’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두운 교회의 역사에 관한 반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지성을 잃은 종교의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철학이 없는 종교는 교리를 맹종하게 되고, 결국 자기만의 독선과 편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지성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병리 현상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예수가 나의 주님이다’라는 고백도 우상숭배로 빠지기 쉽습니다. 무지의 시대를 사는 종교의 모습입니다.
바울의 위대함은 당시의 철학마저 ‘무지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과 문화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정신에 관한 것이요, 삶을 돌이키는 회개의 힘이 없는 정신에 대한 비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에 관한 이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를 향해 회개하는 삶을 열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식인과 문화인으로 만족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 삶을 전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나의 주님이다’라는 고백의 참된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5·18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년 전 기장총회는 이색적인 결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개신교단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순교자 추서(追敍)’를 한 것입니다. 순교자로 거명된 사람은 류동운이라는 스물한 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다가 사살당한 신학생입니다.
한신대학교 신학과 2학년이었던 류동운은 광주항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갔고, 목사였던 아버지가 만류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늘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까? 역사가 병들어 갈 때는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만 더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고. 그런데, 왜 당신 자식만 보호하려고 하십니까?” 결국, 계엄군이 도청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5월 27일 밤, 그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 이름 없는 강물에 띄워주세요.”
어떤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참된 종교는 ‘가난해지는 것을 목표로 사는 삶’이라고 말입니다. 낮아짐이 인생의 목표요,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다가감이 목표가 되는 삶이 예수가 밝힌 길이요, 그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모든 이들이 걷는 길일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베드로가 전한 편지의 내용을 읽으며 오늘 하늘뜻펴기를 마칩니다.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파송사]
베드로의 편지를 나눕니다.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삶은 복이 있습니다. 삶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해 두십시오.” 우리 모두 이 믿음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