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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첫째였던 꼴찌 ㅣ 김지목 ㅣ 2023-09-24

by 김지목 posted Sep 24, 2023 Views 9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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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09-24

 

하늘뜻펴기 20230924 창조절4/한가위감사주일

첫째였던 꼴찌"

16:2-15  145:1-8  1:21-30  20:1-16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노예의 굴종의 삶을 청산하고, 가나안에서 주체적인 자유인으로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했던 사실을 후회하며 원망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광야의 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과거의 사고방식과 몸에 배어 있는 습성을 개선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이었습니다. 1성서의 오경에는, 빼앗긴 이들의 권리를 되찾아주시는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백성을 부르셔서 가나안의 땅을 약속하시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다는 큰 줄거리로 서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신은 인간을 버려두지 않고 유토피아의 희망을 이루도록 인간을 보살핀다는 종교적 가르침인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약육강식으로 타락해서는 안 되기에 마땅히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종교적 메시지가 제1성서, 오늘의 출애굽기에서도 전제되어 있습니다.

 

폭력과 야만의 현실에서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시는 하나님. 야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으로 변화시키려는 종교적 가르침은 우리의 생각, 그리고 삶의 방식의 전환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전환입니다. 신앙의 첫걸음이 되는 회개는 돌이킴, 곧 전환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고 원망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그 전환을 이루지 못한, 과거의 습성을 개선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탈향의 공동체, 이집트에서의 비인간적인 질서에서 탈출하겠다던 그 대단한 결단, 그리고 인간다운 삶과 신적 질서로 이루어질 공동체를 이루기를 희망했던 숭고한 의지가 있었지만, 굶주림 앞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신앙여정의 한 가능성을, 오늘의 출애굽기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따라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던 광야의 길에서, 백성이 굶주림이라는 삶의 위협을 직면했을 때, 백성은 이집트에서 고기 몇 점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가마를 그리워합니다. 그때의 고기가 충분하지 않았을텐데 지금 배고픈 현실이 원망스럽다보니, 그때는 고기를 배불리 먹었었다고 말을 지어내면서까지 후회의 심경을 강하게 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광야의 과정, “탈향의 기로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희망을 완전히 망각하고 이집트의 노예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그러한 회귀는 배반입니다. 백성을 부르셨던 하나님, 그 부르심에 응하여 광야의 길로 나섰던 이스라엘이 다시 이집트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며 배신입니다. 1성서에는 이스라엘의 이같은 배반에 관한 보도가 많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질서로 이루어질 새로운 세계를 성취하는 것이 제1성서가 의도하고 있는 가르침인데,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처음의 그 결단을 망각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에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성서의 이러한 모티브가 암시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 신앙의 정직한 실천이 중요한 것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불평불만의 동기는 굶주림이었습니다. 신앙의 결단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앙의 의지를 흔드는, 그들의 굶주림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은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만나"메추라기"로 그들의 요구를 충족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양식을 상징합니다. 이집트 제국의 권력으로 빼앗은 양식이 아닙니다. 전리품으로 약탈해온 양식이 아닙니다. 지구 생명체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햇빛과 같은 양식입니다. 아침에는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곡식만나", 저녁에는 편서풍에 휩쓸려 떨어진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제공된 하늘의 양식은 기적적인 급식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노동력으로 넉넉하게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피조세계에 이미 제공된 양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받고 있는 햇빛에너지는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기적적인 하늘의 양식 곧 만나와 메추라기입니다.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가 제공되었다는 것은 신앙의 눈을 밝히고 돌이키라는 메시지입니다. 이집트 제국 약육강식의 구조에서 생산된 탐욕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는 습성을 벗어나서, 햇빛에너지의 은총에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의 눈을 지녀야 합니다. 이것이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상징이 암시하는 바입니다.

 

우리 신앙을 위협하는 현실을 직면할 때, 그래서 신앙을 지키는 일이 암담함을 경험할 때 만나와 메추라기에 담긴 성서의 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나라의 희망은 결코 파기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미 주어진 은총에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의 눈을 밝히는 것입니다. 기후재앙의 시대, 그리고 공안탄압과 인위적인 정계재편으로 역사가 회귀하는 암담한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눈을 밝혀서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바를 성실하게 실천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눈이 어두웠던 이스라엘 백성은 암담한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불평불만과 원망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 된다"는 계약을 망각하고 파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을 배신한 불신은 직면한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혈안이 됩니다. 모세와 아론이 자기네를 광야로 끌고 나와서 모두가 굶어 죽게 되었다고 공격했습니다.(16:3)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자들이 가진 두려움을 들쑤셔서 모세와 아론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낙마시키고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불평불만과 원망의 소요를 책임전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문제로 바라보며 대처했습니다.(16:7)

 

신앙공동체는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더불어 살기를 약속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광야의 역경을 함께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공동체여야 신앙공동체라 할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서로를 대상화하고 불평불만의 건에 대하여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면 그 공동체는 바른 신앙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이 신앙 공동체로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원망이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의 이야기로 이스라엘이 신앙의 눈을 밝혀 불신이 아닌 신앙의 공동체로 회복할 수 있도록, 오늘 출애굽기 본문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16:3)라면서 모세와 아론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일에서 공동체의 신앙이 훼손당합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너와 나를 구별하고 서로를 대상화한 까닭입니다. 서로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까닭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는 지체들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모래 한 줌이 뭉쳐지지 않는 것처럼 공동체가 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빌립보서에서 신앙공동체에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1:27-28a) 신앙공동체가 마땅히 복무해야 할 선교사업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위하여 한 정신한 마음으로 함께싸워나가길 바라는 권면입니다. “한 정신한 마음”, 그리고 함께투쟁하는 신앙공동체의 바른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정신과 마음, 곧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 내적으로는 같은 사상과 한결같은 마음을 공유하면서, 외적으로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함께 싸워나가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이같은 신앙공동체의 구심력과 원심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동적인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근원추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 동력은 공동체의하나됨'입니다. “한 정신한 마음으로 구심력의 무게를 강화하고, 하나님나라를 향한 복음 선교를 위해 함께 투쟁하는 기풍으로 원심력을 확산시켜 나가는 동력이 우리에게 충분하기를 바랍니다. 광화문의 터 새로운 교회당에서 우리는 우리가 펼쳐갈 새로운 선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한 마음의 구심력이 더욱 결속되기를 바랍니다. 모임과 회의를 하면서한 정신의 구심력이 결정체로 빛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미래선교연구위원회 안에서 계획되고 있는 여러 선교사업들을, 우리 모두 원심력이 되어 함께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특권, 곧 그리스도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동화되어 구원을 얻는 특권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우리가 받았다고 전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고난, 그것은 우리 서로에 대한 헌신과 책임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 자신은 육신과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할 수 있는 신앙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만, 서신의 수신자들을 위하여 자신은 육신과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러한 헌신과 책임의식의 선택은 그가자처한 고난입니다. 서신을 받아보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찰을 돕기 위해 바울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서로의 신앙을 위해서 도움을 주고 헌신할 수 있는 바울과 같은 마음이라야한 정신", “한 마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그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품고 있습니까?

 

오늘 마태복음서 본문은 포도원 주인에 관한 비유로 하늘나라를 설명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고용합니다. 이른아침 6시쯤에 한 명, 9시쯤에 또 한 명, 12시에도 한 명, 오후 3시에도 한 명, 그리고 5시에도 한 명을 고용하였습니다. 저녁 6시쯤에 일을 마치고 품삯을 정산할 때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치르자 일찍부터 일한 일꾼이 불만을 가졌습니다. 늦게 일하러 온 일꾼들보다 더 많은 시간, 찌는 더위 속에서 일한 삯을 셈하지 않았다는 불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포도원 주인은그것이 내 뜻이오.”라며 먼저 와서 일한 일꾼들의 항의를 일축합니다. 포도원 주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 예수님은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20:16)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비유는 하늘나라의 셈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돈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한 가정의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기본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삶의 기본권을 마땅히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늘나라의 원리임을 가르치는 비유입니다. 기대한 품삯을 받지 못해 불평불만으로 포도원 주인을 원망한 일꾼은, 하나님의 마음, 하늘나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첫번째 일꾼으로 왔지만 하늘나라에서 꼴찌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을 결단하여 첫째가 된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가운데 다시 꼴찌가 될 수 있는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굶주림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당히 큰 시련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시련을 두려움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불평불만과 원망으로 이어지고 타인을 대상화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집트 제국의 질서를 다시 동경하는 죄입니다. 첫째였지만 꼴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시련 앞에 서있는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합니다. 서로의 빚을 탕감해주는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어 줍니다. 역동적인 구심력과 원심력의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줍니다. 그 사랑은 포도원 주인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하늘나라의 원리를 이 세상에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첫째였던 꼴찌는 아닌지, 올 한 해의 결실에 감사하는 계절에 우리 신앙을 돌아보며 보다 큰 성찰로 신앙의 깊이를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침묵합시다.

 

(침묵)

…......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한 해의 삶을 감사하고 주신 결실에 감사하십시오.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를 기억하십시오.

신앙의 눈을 밝게 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과 늘 동행하십시오.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삶을 돌봐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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