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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사랑으로 이룬 평화 | 김희헌 | 2020-08-02

by 김희헌 posted Aug 02, 2020 Views 7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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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8-02

사랑으로 이룬 평화 (창 32:22-31, 롬 9:1-5, 마 14:13-21)

2020.08.02. 성령강림절 열째 주일

 

[김낙중의 꿈과 삶, 평화와 사랑]

지난 수요일 김낙중 교우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이 애도의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저는 그 삶의 끝자락만 보았기 때문에, 운동가의 모습보다는 노년의 삶을 진실하게 대하는 신앙인의 모습에 익숙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거의 매주 교회에 오셨고, 가끔 제방에 들르셔서 잡지나 책을 전해주곤 하셨지요. 책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그분의 삶을 알아갈수록, ‘평화’를 위한 치열한 구도자의 모습과 끈질긴 혁명가의 모습을 함께 느껴졌습니다. 

따님이 지은 책을 보면, 김낙중 선생 어머니의 태몽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한 짝 밖에 없는 맷돌’에 관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다른 한 짝을 찾아서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는 꿈을 꾸셨기 때문에, 나중에 아들이 김남기 권사님과 혼인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낙중이가 결혼을 못 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을 쓴 따님은 아버지의 태몽을 다른 의미로 해석합니다. ‘분단된 나라의 반쪽을 찾아 한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어쩌면 태몽과 그리 닮았을까?’ 하며 놀랐다는 것입니다. (김선주, 탐루, 19)

김낙중 선생은 죽음을 넘나드는 온갖 고난을 다 받으면서도, 평화와 통일을 끈질기게 추구하셨습니다. 식민시대의 한과 분단시대의 짐을 다 지고 온 그의 모습이, 저에게는 마치 역사의 형벌을 수행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김낙중 선생의 글을 읽으면 한 가지 주제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역사의 구원을 ‘평화’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는 통일에 관한 민족주의적 당위성보다, 세계 시민주의적 폭을 가진 평화의 이상을 강조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구도자로서의 기질이 강했기 때문에, 그의 평화 사상은 정치적인 감각만이 아니라 종교적 깊이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권력에 의존한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정치가의 삶보다는 이상주의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이상은 관념적인 급진성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길을 사랑에서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에는 ‘종교를 빙자한 정치’의 모습도 ‘정치를 탐하는 종교’의 흔적도 없습니다. 

역사적 구원이든 종교적 구원이든, 구원을 바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이 세계에 대한 반란의 감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원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구원이 어떻게 이뤄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낙중은 그것을 ‘사랑으로 이루는 평화’라고 보았고, 그것을 역사의 품과 민중의 삶에서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 또한, 민중과 함께 세상의 밑바닥을 딛고, 역사의 길을 내고자 일관되게 살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합니다. 

천국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성서의 증언은 빈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윤리적 고매함도 아니요, 종교적 금욕도 아니며, 신비적 초월도 아니라, 바로 가난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심오한 영성과 혁명의 윤리는 대체로 ‘가난’에 대한 대담한 성찰에서 비롯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 세계가 주입하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한평생을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평화와 사랑의 삶을 살아간 김낙중 교우를 기억하며, 우리 신앙공동체가 그의 뜻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명령 / 마태복음 14장 13-21절]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이 이야기를 주로 읽은 때는 예수의 삶을 잇고자 다짐하는 성만찬의 자리였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다짐하려는 것이었을까요?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찾아온 민중들의 아픔을 고쳐주시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헤쳐 보내 각자 먹을 것을 사 먹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이 물러갈 필요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아마 제자들은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자신들이 먹기에도 모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들고 하늘을 보며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고, 제자들도 무리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분명히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동안 이 이야기를 ‘음식이 자동으로 불어난 기적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초능력을 강조한 것인데, 사실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추측한 것입니다. 예수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그런 기적을 베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만일 그런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먹여볼 테니 너희들은 구경이나 해라.’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도전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것은 사랑의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현재의 곤경을 이겨낼 길을 너희의 사랑에서 찾아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어떻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만 명은 족히 되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기적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먼저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축복합니다. 그것은 마술적인 예전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분에 대한 신뢰를 안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이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마 6:11) 그렇게, 자신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드린 기도를, 지금은 수많은 배고픈 사람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은 여기서 예수님의 기도를 받고 ‘빵과 물고기’가 늘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축복을 하고 난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을 때, 제자들도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더니, 모두 배불리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성만찬 메시지입니다. 떡을 떼고 자기 소유를 부수는 사랑의 삶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기적이란 사랑이 이뤄가는 삶의 혁명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자기를 찾은 야곱 / 창세기 32장 22-31절]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 이야기의 전체구도는 ‘갈등에서 화해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전환점에 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형을 속이고 삼촌 집으로 피신을 했다가, 거기서 20년을 지내면서 큰 가족을 이루고 재산을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의 분노와 복수가 두려웠습니다. 갖은 궁리를 다 짜내보아도 여전히 불안하여, 가족들을 먼저 강 건너로 보내고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야곱은 커다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새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형과 화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얍복강에서 야곱이 씨름을 한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설화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먼저, 여러 설화가 겹쳐진 이 이야기에서, 야곱과 밤새 씨름한 알 수 없는 존재가 얍복강을 지키는 물귀신이었는지, 하나님이었는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나서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했는데, 야곱의 엉덩이뼈를 치고서도 이기지 못해서 자신을 놓아달라고 애걸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밤을 새운 씨름에서 이긴 야곱이 과연 무슨 축복을 얻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대화는 이렇습니다. ‘축복해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씨름하는 야곱에서, 싸움의 상대방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분은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하고 말합니다. 

야곱이 씨름을 하면서 원했던 축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형의 분노로부터 목숨을 건지는 ‘안전’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재산이나 자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축복을 달라는 야곱에게 주어진 질문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 질문을 다르게 말하면, ‘네가 너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야곱은 이 질문을 받고,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나는 사기꾼입니다’ 하는 실토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은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더 깊은 차원의 물음이 담겨있었다 하겠습니다. 그것을 풀어 말하자면, ‘네가 받고자 하는 축복은 무엇이고, 그것을 받고서 너는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존재가 되라는 요청’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은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룬 사람, 하나님을 본 사람,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존재,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자 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새날이 밝아 아침이 오자 사라지고 맙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이렇게 살아남았구나’ 하고 말하며, 그곳 이름을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붙입니다. 어두운 밤의 씨름을 마치고 아침을 맞은 야곱은 절뚝거리며 형을 만나러 갑니다. 

브니엘 사건은 야곱이 경험한 카이로스의 사건입니다. 이런 구원의 사건, 카이로스의 사건을 경험하여 안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구원의 사건은 존재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더욱 깊이 안다는 것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요, 따라서 알고 난 후에는 알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이제 형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옛사람이 아니라, 비록 절뚝거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지고 일어선 새로운 사람으로서 형과 화해를 하러 갑니다. 

 

[바울의 민족애 / 로마서 9장 1-5절]

신앙은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기 시대에 충실한 삶입니다. 그런 모습이 오늘 로마서 본문에 담겨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 말은 자기 민족의 이해관계에 갇힌 국수주의적인 발언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살아갔던 바울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발언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실패에 대해서 애통해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 본문을 오해했습니다. 겨레를 위한 ‘정치적 삶’과 그리스도를 향한 ‘종교적 삶’이 서로 충돌을 하게 되면, 종교를 버리고 대신 정치를 택하겠다는 말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것은 편협한 민족주의적 해석이요, 신학적 세계관이 충분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이해였습니다. 이 본문은 그리스도를 버리고서라도 민족운동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시간에 참여하지 못한 동족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이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자기 동족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가치를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생각하는 동족의 장점을 이러한 것들입니다. 그들에게는 1)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2)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3)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4) 그리스도 역시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혈통과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도리어 바울의 마음에 번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소유한 민족이었지만, 그러한 훌륭한 자격이 도리어 믿음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의 율법에 매여, 억압적 생활양식의 굴레에 묶여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본 믿음의 실패는 단지 윤리적 부패나 정치적 반동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의 몰락입니다. 종교 정신이 몰락하면, 구원의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전통이 있고, 예배가 있고, 약속이 있어도, 현재의 질서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여기는 것이야말로 무신론이라 하겠습니다. 무신론이란, 단지 신이 없다고 보는 견해가 아니라, 이 세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마음입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사랑과 평화로 변화시키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탄식하는 피조물과 함께하며, 그들을 대신하여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써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며,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는 곳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울의 믿음이요, 신앙공동체가 전승하는 믿음의 요체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본 세 개의 본문은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모두 삶의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전통이 되어 성서를 통해 이어집니다.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어가는 그 전통은,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삶을 바친 믿음의 선배들을 기억하며, 우리도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는 예수의 삶을 이어갑시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바닥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사랑으로 사는 그들이 오늘의 예수를 사는 이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는’ 삶을 이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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