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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 홍이승권, 김영환, 김희헌 | 2020-06-14

by 김희헌 posted Jun 14, 2020 Views 9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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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6-14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18:1-15, 5:1-8, 9:35-10:8)

2020.06.14. 성령강림절 셋째 주일, 6·15남북공동성명 20주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1997년부터 625일이 들어있는 일주일을 민족화해주간으로 지켜왔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면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다가 2000<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부터는 615일부터 25일까지 민족화해주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6.15공동선언> 20주년을 기념하며, 평신도 하늘뜻펴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먼저 홍이승권 장로님이, 그다음에는 새날청년회의 김영환 교우님이, 마지막으로는 제가 하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홍이승권]

평화(平和)의 한자 말은 추의 양쪽 무게가 같은 것을 뜻하는 평평할 평자이고 화자는 벼 화()에 입 구()가 붙은 말입니다. 곧 평화는 사람 입에 먹을 것이 골고루 나눠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진정 이 땅의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만큼 북한 사람 또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우리의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6.15 20주년이 된 올해, 15년 전의 제 경험부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05년 저는 교우들과 같이 평양의 정성 제약기공식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방문하였던 인민대학습당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다행히 일행 중 그 사고를 비켜나가게 되어서 다행이었지만, 북쪽의 1명과 남쪽의 2명에 대하여 응급진료를 해야 할 상황에 빠졌습니다.

저는 1층에 쓰러져 있는 13명 중에 골절상 등 중증질환을 감별하기 위해 외교부 산하 친선병원에 구급차를 타고, 한동안 무리와 홀로 떨어져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북의 응급의학과 의사들과 협진을 하면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들은 자족 자급 생활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보통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걱정된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쪽 환자에 대한 우려의 표정을 짓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북의 순안공항에서 응급환자를 김포공항까지 호송할 수 있었고, 서울대병원 응급 병상에 입원시킨 후 저의 임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615, 20주년을 맞아 우리가 어떤 고려를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행동과 헌신을 결단하여야 합니다. 평화 행동과 남북나눔기금 나눔이 그것입니다.‘첫째는 정의에 기초한 평화를 맞으려면 평화 행동에 매진해야 합니다.’

바로 10일 전, 지난 64일 노동당 제1부부장인 김여정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쓴소리를 하였습니다. 북남군사합의파기를 한 상황에 대하여 6.15 20돌을 맞게 되는 이 상황에서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지난주 69일 남북 모든 통신연락망을 단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사건이 아주 심각한 상황임을 드러내 주는 것이,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1일 경기 김포에서 대북 전단 50만 장과 소책자 50, 1달러 지폐 2000, 메모리카드 1000개를 대형 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단 내용과 메모리 내용이 무엇인지는 언론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몇 년 전 전단 내용을 전해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기절초풍할 지경입니다. 북에서 엄청 분노한 것을 보면 이번의 내용 또 한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사실 이는 언론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남북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나 서명한 남북합의서를 파괴하는 위법 행위이자 6.15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만약 남한이 북한을 비난하는 전단지 살포를 언론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 또한 허용해야 할 것입니다만,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최소 3년 징역형을 살아야 합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모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전제가 있습니다. 정의에 기초하지 않는 평화, 힘으로 누르는 평화는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일 뿐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9-10장에 걸쳐 예수에 대하여 사제와 의사와 평화운동가의 역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주셨다. 이어지는 마태복음 10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하며 정의에 근거하지 않는 평화는 거짓 평화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지난 529일 새벽, 소성리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기지에 기습적으로 장비를 반입하였습니다. “내정 남불: 내가 하면 정의이고 남이 하면 불의인 이런 미국의 오만한 행동은 성경에 나오는 돼지 떼(troop)에 귀신들린 상황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불의에 항거하는 주민과 행동가들은 정의에 기초한 평화에 매진하는 분들입니다. 북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말하고 미군철수를 말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종북이라 주장하는데, 진짜 평화를 외치는 국민의 입과 양심에 자갈을 물리고 있고, 양심의 자유에 반하기 때문이기에,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평화를 위한 방법으로서의 철폐철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쪽만을 절대시하는 종북혹은 종남은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우리는 친북 인사가 친미인사보다는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 이처럼, 행동이 없는 국가보안법 철폐란 표어는 사랑이 없이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두 번째는, 오늘 제가 제안할 남북나눔 선교기금에 대한 제안입니다. 진정한 도움을 주려면 남모르게 조용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달동네에 뛰어노는 아이에게 불쌍하다면서 과자를 사주는 행위는 아름다운 행동일까요? 무례한 행동일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불쌍한 아이를 도와주는 행위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 처지에서 보죠. 가난한 동네에 사는 아이는 자신이 가난한 줄도 모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동네에 살고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무조건 불행한 삶이고 불쌍하다고 느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주는 것은 아이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입니다. “도움은 상대가 도와달라고 하거나 도움을 받기를 동의할 때 도와주는 것이 좋은 도움이지, 일방적으로 내가 판단해서 넌 불행해! “라고 도와주는 것은 도움이 아닌 불쾌한 행동입니다. 남한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습니다. 북한은 불쌍한 나라이기에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나라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남한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듯, 물질적으로 못 산다고 북한 주민들이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한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조그련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복음주의 권의 선교단체로부터 코로나 사태의 예방책으로 마스크를 은밀하게 전달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겨울, NCCK((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보낸 물품이 되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NCCK가 여러 교단이 함께 관여하고 정부나 교단에 보고해야 하는 투명성 문제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할 수 없는 단점이 있어, 북쪽이 반려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NCCK가 비공개로 진행할 수 없는 약점 때문에 언론 노출이 불가피한 것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지점은 북 정부는 공식적으로 남쪽으로부터 어떠한 물품도 받는 것을 거부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자가 부족하기에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 정부에서도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북한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심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지금 남한과 북한은 이념의 그물을 쳐 놓고 서로를 증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보았던 예수,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보았던 예수는 본문에서와같이 "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는 행적"을 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귀신 들린 자들은 부모로부터 방치되었거나, 학대를 받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 이와 마찬가지로 남북 분단상황으로 피해당한 자매 형제들은 불안하여 트라우마가 뇌 속의 아몬드 크기의 amygdala(편도체) 라는 기관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일관된 행동 원칙은 사람의 미충족수요를 먼저 간파하셨기 때문에 치유와 회복을 위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본문에서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의 방안으로 제시하시는 것은 첫째, 평화운동가로서 평화를 위하여 일하여야 하는데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본문 마9:37) “고 일갈하십니다. " 일좀 해라! 행동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둘째는 치유자로서 앓는 사람을 고쳐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또한 이야기하십니다. 치유와 회복의 기금을, 선교기금을 마련하라는 명령이신 것 같습니다. 이는 본문 마태복음 10:8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진 소유는 여러분이 수고해서 얻은 것은 맞지만,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모든 사람이 같은 수고를 하지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생겨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이 수고는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진 것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거저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대학병원에 일터를 가지고 있지만, 저희 가장 큰 소망은 통일이 되면 평양근교에서 일차 진료를 하며 북쪽의 보건의료일꾼들에게 제 의료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에 30여 년을 다닌 향린교회 평신도로서 한 가지 덧붙인다면 지금 우리가 향린교회 건물과 부지 매도로 인해 큰 금액이 생겼는데 이게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입니까? 물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선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요 그래서 신앙적인 의미에서 이는 우리가 거저 얻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묵상하며 현재 상황에 맞도록 구문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코로나 공포에 빠져 있는 북의 형제들을 보살피고, 위로해 줄수 있는 보건의료의 손길을 더하여라, 결핵 등 감염질환에 고통에 빠진 자들을 깨끗하게 하여라, 전쟁 귀신을 쫓아내어라. 그리고 새 이주 터, 광화문 땅을 수고로 일구고, 거저 받았으니, 남북나눔기금을 통해 또한 형제들에게 거저 주어라.’

코로나 19에 대하여 초기 방역에 성공한 나라들이 2차 대유행을 겪을 가능성은 오히려 더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소 내년 말까지는 환자가 증감을 반복하며 유행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가을 이전에 대유행이 한반도에 다시 오면 위험합니다. 우리가 남북나눔헌금을 드려온 지가 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북한 선교를 위해 우리는 애를 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간파하신 그것처럼 조용히 마스크 및 손 소독제가 필요함을 파악하고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나눔 헌금을 기금화하여 획기적이고 신앙적인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매해 남북나눔헌금에 동참하여 오신 교우 여러분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도 매주 혹은 매일 한 끼를 굶어가면서 드리는 교우들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새 터를 향하여 힘을 모으고 있는 이때, 615, 20돌을 맞아 선교기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어 남북나눔 기금을 조성해야 할 때입니다.

 

[6.15 이후. 김영환]

오늘 발언의 기회를 주신 향린 공동체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새날청년회의 김영환이라고 합니다. 우선, 제가 새청을 대표하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저를 대표합니다. 그냥 아 저 친구는 저렇게 생각하나 보다 정도로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6.15 선언 이후 2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초등학생에서 스물보단 서른이 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남한에서는 정권이 네 번 교체되었고, 북한에서도 지도자가 바뀌었습니다. 남북관계도 많은 변화를 거쳤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는 오랫동안 통일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이 많으니 제가 혹은 우리 세대 일부가 공유하고 있는 통일에 대한 관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담론의 논리적 타당성과는 별개로 다수의 지지와 실현 가능성은 비례하므로 타 세대의 관점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두 가지 점에서 의문시됩니다. 첫째로 통일은 나의 삶에 기여할 것인가? 즉 현실적 이익의 문제입니다. 2014년의 조사에서 절반의 국민이 통일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이익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그의 절반 25%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이익에 개인의 이익을 종속시킬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 개인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 사회문제들 빈부격차, 부동산투기, 실업문제, 범죄문제, 지역갈등, 이념갈등 등의 문제가 통일 이후에 더 악화 될 것이라고 보는 경향은 청년층의 경우에 더욱 심하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서 볼 때 청년층의 경우 보편가치의 실현과 민족적 당위성과는 별개로 통일을 불확정적인 위험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이에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통일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반수에 이르는 사람이 통일과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통일을 통한 보편가치의 실현에도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삶에 기여하지 못하고, 보편가치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보는 인식은 통일에 유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대가 갈수록 개인주의적 태도와 프래그머티즘이 심화되고 있으므로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통일에 대한 유보적, 소극적 태도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나는 민족적 정체성에 우선적으로 복무해야 하는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대학에 있을 때 선배들은 양심수 후원의 당위를 민족해방에 두고 설명해왔지만 크게 반응이 없었습니다. 후에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기반해 이를 설명하였고 많은 친구들이 공감했습니다.

단편적인 경험을 뒤로하더라도 현재 세대들이 민족보다는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더 큰 귀속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화를 통한 타국민들과의 교류는 다문화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구체적인 속성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교포보다는 귀화인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낍니다. 따라서 통일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여기까지 말한 것으로는 분단의 영구화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느낍니다. 청년세대는 북한민들에게 같은 생활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에 올라온 한 청년이 북한민들과 함께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횡단하는 영상과 이에 대한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같이 서로의 밥을 나눠 먹기도 하고, 서로의 사회에 대해 묻고, 언어를 공유하며 교류하는 모습은 유대의 희망을 줍니다. 즉 현재의 청년층은 북한민에게 열려 있습니다. 도리어 이념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점에서 탈냉전의 기조를 더욱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이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제되지 않은 교류, 남북의 생활인과의 교류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고, 통일담론이 다시 활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향린에 온 지 2년이 되어갑니다. 별일 없이 지나온 줄 알았지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속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에 속하게 되었고 새청에 속하게 되었네요. 제 감정에도 크게는 제 삶에서도 평화를 누린 것 같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분들의 환대 때문이겠지요.

새청에서는 많은 것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합니다.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얘기를 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 같습니다. 이럴 수 있는 토양은 먼저 길을 가신 분들이 닦아준 것이겠지요.

이런 공동체를 물려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또 항상 청년들에게 보여주시는 관심에 감사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김희헌]

연초에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하여 작년부터 멀어져 온 남북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은 모든 대화창구를 닫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냉전과 탈냉전의 이중기류가 교차하고 있는데,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종합적인 지혜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남과 북이 나아갈 길은 사실 하나밖에 없습니다.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동반자로서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한 것이 20년 전, 남과 북이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서 발표한 <6.15남북공동선언>입니다. 다섯 개 항으로 구성된 선언문의 내용이 길지 않으니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가운데 2항만 읽어드리겠습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6.15남북공동선언>이 중요한 것은 통일방안에 관한 국가 간의 합의에 있다고 봅니다. 이전에는 상대방의 통일방안을 지지하면 체제전복 세력으로 취급당했지만, 이 선언 이후에는 함께 미래를 지어갈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20년이 흐르는 동안, 그 절반은 이 선언의 뜻을 이어가려는 민주 정부의 노력이 있던 반면, 다른 절반은 선언의 정신을 좌초시키려는 세력들의 필사적인 반동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20년을 지나오는 동안 저에게는 한 가지 의구심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권위주의 정권의 기만적인 화해정책만이 아니라 소위 민주 정부에서 실시한 정책들조차 결국에는 국가주의적 활동으로 귀속되고, 시민들은 항상 대립적인 진영논리로 갈등하고 서로를 희생시키는 일이 반복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국가 자체가 지배체제요, 폭력적 대립구조를 기반으로 하여 존립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트럼프가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국가철학은 마가복음입니다. 성서의 마가복음이 아니라, 영어로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주장하는 제국주의 세계관입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은 지배체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트럼프의 마가복음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러나 진실로 평화로운 길을 걷고 싶다면, 성서가 말하는 복음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 읽은 마태복음서 본문에서, 열두 제자들에게 당부한 예수님의 분부에 나와 있습니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다니면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을 고쳐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6~8)

이것이 평화운동을 삶으로 펼쳐가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평화운동의 지역화’(localization)라고 하겠습니다. 평화의 운명을 국가에 맡기지 않고, 민초들의 삶의 자리에 심어가는 것입니다.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 금요일 NCCK에서 주최한 신학포럼이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주제를 연구하던 중에 기독교윤리학자, 도널드 슈라이버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적을 위한 윤리입니다. 그는 대결 구도에 사로잡힌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 방안을 성서의 예수 정신에서 찾고, 그것을 가리켜 용서의 지역화라고 표현합니다. ‘용서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바리새인과는 달리, 예수는 누구나 어디서든지 용서의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았고, 용서의 중앙집권화를 해체하고, 모든 삶의 자리로 확산시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려는 공동체 운동을 위한 하나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구상과 활동도 국가에 모든 것을 위임하지 않고, ()의 삶에서 이루어 갈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지어가는 공동체의 꿈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로마서에서 울리는 바울의 음성을 듣다 보면,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한반도에서 평화의 길을 찾던 사람들의 심정이 겹쳐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5:3-5)

폭압적인 제국의 시대 속에서,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한 바울의 믿음을 마음에 되새겨봅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양주에서 효순미선평화공원완공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우들도 마음을 보탰기에, 제가 교회를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18년 전 15살 된 두 여중생이 미군 탱크에 깔려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재판은커녕 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자주 국가로서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모습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믿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의 만인사제설이라는 것도 단지 가톨릭의 성직체계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그 핵심은 스스로 일어난 자주정신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서 예수의 복음을 살아내는 주인공이 되려는 열망이 만들어낸 정신입니다. 그것이 위태로운 시대에도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성서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의 삶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기를 빕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며, 땀 흘려 일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환란의 시대에도 인내하며, 품격있는 희망을 키우는 믿음의 삶이 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는 생명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 그 생명과 평화의 길을 우리 모두 힘차게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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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이성환|2020-05-31
2020-05-24 지금이 바로 그때인가? |김희헌|2020-05-24
2020-05-10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 김희헌 | 2020-05-10
2020-05-03 평화로 가는 길 | 김희헌 | 2020-05-03
2020-04-26 다시 가슴이 뜨거워질 때 | 김희헌 | 2020-04-26
2020-04-19 4.19혁명과 역사의 증인 | 박영숙, 김가흔, 김희헌 | 2020-04-19
2020-04-12 부활절 아침의 세 질문 | 김희헌 | 2020--4-12
2020-04-05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 김희헌 | 2020-04-05
2020-03-29 무덤에서 선포된 생명 | 이성환 | 2020-03-29 1
2020-03-22 주님은 중심을 본다 | 김희헌 | 2020-03-22
2020-03-15 목마르지 않는 샘물 | 김희헌 | 2020-03-15
2020-03-08 어떻게 거듭나는가 | 김희헌 | 2020-03-08 1
2020-03-01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 김희헌 | 2020-03-01
2020-02-23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 김희헌 | 2020-02-23
2020-02-16 생명을 택하라 | 김희헌 |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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