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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물 위를 움직이는 성령 | 김희헌 | 2020-06-07

by 김희헌 posted Jun 11, 2020 Views 8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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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6-07

물 위를 움직이는 성령 (1:1-2:4a, 고후 13:11-13, 28:16-20)

2020.06.07. 성령강림절 둘째 주일, 환경주일

 

[환경주일을 맞는 교회의 다짐]

오늘은 환경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1992년부터 6월 첫째 주일을 환경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불편을 길게 경험하면서, 우리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환경주일의 의미가 더욱 깊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지난주에 <녹색교회 네트워크> 총회가 있었습니다. 2006년부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소속된 교회 가운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교회를 녹색교회로 선정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2009년에 선정되었으니 상대적으로 일찍 환경문제에 대한 실천을 시작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 가운데 녹색교회로 연대하는 교회가 올해 선정된 교회를 포함해서 80개밖에 되지 않으니,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개신교의 활동이 뒤처졌다는 반성이 듭니다.

총회 자료집에는 소속된 80개 교회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에 대해서는 여섯 가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향린교회는 1995년 생명환경위원회를 조직하였고, 해마다 환경주일을 지킨다.

* 완주의 들녘교회가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하는 쌀 전체를 구입하고, 수익금은 전부 들녘교회 사례금으로 보낸다. 들녘교회 교인들이 심은 고추와 마늘, 배추, 잡곡류, 들기름 등도 구입한다.

* 2010년에 들녘교회 예배당과 사택의 지붕에 햇빛발전소 1, 2호기를 세웠으며, 전기판매 수익금을 모아 30%는 들녘교회와 북한 어린이 지원에 사용하고, 70%는 참여한 회원들에게 들녘농산물로 배당을 시행한다.

* 생명환경위원회 외에도 교인 소모임인 평화나눔공동체가 있다. 생명환경위원회는 공적인 일을 처리하고, 평화나눔공동체는 삶에서 실천한다.

* 이산화탄소 저감 운동 참여 취지로, ‘차 없는 주일을 지키고 있다.

* 어린이부와 청소년부에서도 창조보존과 관련해 교육한다.

이상의 내용은 한국교회의 평균적 활동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으면서 느끼셨겠지만, 환경문제에 관한 우리의 관심이 자라지 못하고, 오히려 축소되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선교 방향을 논의할 때 이 문제를 깊이 다뤄봤으면 합니다.

올해 환경주일은 기후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녹색교회 네트워크> 총회에서도 기후위기 비상행동출범식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신앙인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기후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또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위기상황은 제한적이다 보니, ‘기후위기또는 기후붕괴라고까지 일컫는 이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구의 기후위기 상황은 이미 회복 불능의 지점을 지나갔다고 말하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20195월에 발표된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의 특별보고서에 의하면, 30년 뒤인 2050년에는 지구면적의 35%, 그리고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의 55%가 생존이 어려운 환경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에는 안보가 위협받는 분야를 군사적 경쟁이나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로 봤는데, 앞으로는 기후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보고서>의 경고대로라면, 30년 이후에는 우리가 지금 관심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 의미를 잃고 말지도 모릅니다. 기후위기에 관한 생태적 책임감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기후위기 비상행동출범식에서 발표한 <선언문> 끝에는 신앙인의 세 가지 고백과 다짐이 있습니다. 녹색교회에 소속된 교회의 성도들로서, 이 선언에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며 그 내용을 요약하여 읽어드립니다.

첫째, 우리 녹색교회는 회개합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욕망의 삶과 창조세계를 온전히 돌보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풍요와 소비를 추구한 삶을 참회하며,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에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둘째, 우리 녹색교회는 실천하겠습니다. 불필요한 소비와 과다한 소유를 줄이겠습니다. 소비와 소유를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삶에서 벗어나, 절제와 청빈의 삶을 통해서 생태적 정의를 이루도록 깨어 기도하겠습니다.

셋째, 우리 녹색교회는 알리겠습니다. 기후위기의 비상사태를 알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웃과 생명이 기후위기로 고통당하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 삶을 돌이켜서 생명의 길로 초대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이 내용을 녹색교회 네트워크에 속한 교회는 이 내용을 게시하기로 하여, 우리도 교회 계단 입구에 걸어두었습니다.)

 

[창조의 시간에 / 창세기 11~ 24a]

성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창세기는 창조에 관한 두 개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설화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신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바벨론의 폭력적 창조와는 달리 말씀으로 이뤄지는 창조의 평화로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긍정, 조화로운 창조 활동과 안식의 축복,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과 그의 청지기 역할 등 많은 가르침이 이 이야기에서 쏟아집니다.

환경주일을 위한 묵상으로 저는 오늘 본문 가운데, 12절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늘뜻펴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창조의 시간에 관한 성서의 묘사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주 창조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역사나 개인의 삶에 깃든 모든 창조적 시간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고도 봅니다.

창세기 12절에 대해 깊이 있는 신학적 해명을 한 분 가운데, 2년 전 우리 교회에서 하늘뜻펴기를 하신 미국 Drew 대학의 Catherine Keller 교수가 있습니다. 그때 통역을 맡았던 박일준 박사가 최근 켈러 교수의 책을 번역하여 보내주었는데, 그걸 읽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1절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대부분 성서는 1절을 완성된 문장으로 번역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읽으면, 그다음에 나오는 2절은 마치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 활동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성서연구는 다르게 읽기를 권합니다. 1절을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뒤에 나오는 2절을 꾸미는 부사절로 읽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에.이렇게 읽으면, 2절은 창조가 되는 때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2절의 이 내용은 모호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읽을 때 이 부분을 지나치고 그냥 3절로 넘어가곤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니, 빛이 생겼다.이렇게 2절을 간과하는 이유는 그것이 창조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창조의 장면은 3절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씩 지어지는 세상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서를 읽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신학적 판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가르침을 마치 무()에서 유()를 지어낸 창조주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2절을 들여다보면, 창조의 시간에 관한 아주 특이한 묘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창조가 이루어지는 시간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무언가를 포착하거나 측량할 수는 없지만,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낱말이 혼돈(tohu), 공허(bohu), 어둠(choshek), 깊음(tehom)’인데, 이것들은 형용사가 아니라 모두 명사입니다. 어떤 실체에 관한 명칭입니다.

실감 나게 1~3절을 원문을 섞어서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엘로힘(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짓기 시작했을 때, 땅은 토후 바 보후였고, 어둠이 테홈의 얼굴 위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영(루아흐)은 물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이 거기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다.

이게 창조의 시간에 대한 성서의 기록입니다. 설명이 필요한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 첫째, 땅은 혼돈과 공허토후 바 보후’(tohu va bohu)였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명사형으로 번역하다 보니 혼돈과 공허라고 했는데, 그 뜻을 분명하게 바로잡으면, 땅은 황량하고 야생적이었다고 하는 것이 낫습니다. ‘토후 보후라는 히브리어는 장난스러운 시적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형태는 없지만, 존재하는 물질의 기초적인 리듬을 암시하는 운율입니다.

둘째, 어둠이 깊음(tehom)의 얼굴 위에있었다는 말입니다. ‘깊음으로 번역된 테홈은 측량 불가능한 잠재성을 가진 시원적인 상태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훗날 아비소스’(abyss)로 번역된 이 테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의미합니다. 이 테홈에서 온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 ruah는 물 위에서 부는 호흡과 바람입니다. 그 움직임을 가리키는 동사(rachaph)변함없이 흐르는 움직임을 뜻하기보다는 박동하는 운동을 의미합니다. 새의 날갯짓이나 호흡의 진동, 또는 대양의 출렁거림과 같은 동작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빛이 창조되기 전, 어둠에 감추어진 세계에 대한 성서의 묘사가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와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창조의 사건에 관한 심오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확실성이 출렁이고, 상실의 바람이 이는 어둠 깊은 바다 위에서도 하나님의 영은 움직인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살아온 소비 자본주의의 삶은 생태적으로 지구를 회복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정의롭고 평등한 삶에 관한 꿈을 좌초시켰습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전의 삶의 방식은 멈추고 있고, 미래는 아직 지어지지 않은 채 불분명합니다. 우리 삶에 동반된 모호함과 불확실성, 미래를 향한 삶에 뒤따르는 위험, 그속에서도 빛이 있으라고 하는 은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만일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미래를 위한 희망이라고는 모두 빠져 죽은 어둠 깊은 테홈과 같은 세계에서도 창조의 시간은 지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오래전부터 창조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운 교훈이었습니다. 켈러 교수는 이 창조 이야기의 가르침을 4세기의 교부 암브로시우스의 해석에서 찾습니다. 그것은 혼돈의 한복판에서 파도를 헤치며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세상의 파도가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창조적인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물 위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영이란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도록 곁에서 격려하고 안내하는 하늘의 돌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일치를 위한 삶 / 고후 13:11-13, 마태 28:16-20]

다른 두 성서 구절을 보겠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성령강림절 다음 주를 삼위일체주일로 지켜왔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삼위일체 사상은 평화로운 교감그리고 은총 속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에 관한 교훈을 줍니다. 2성서의 본문은 삼위일체에 관한 대표적인 두 개의 성서 본문입니다.

고린도후서의 본문은 편지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권고와 축복입니다. 바울은 먼저 다섯 개의 짧은 명령문으로 고린도 교회의 교우들을 권면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바울의 이 권면은 갈등상황에 놓인 신앙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읽어보면, 고린도의 교회는 서로 파벌을 이루며 네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교회는 크게 두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경제적인 차이에서 오는 공동체 안의 긴장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가 맡은 직분과 은사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다섯 가지의 권면을 합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공동체에 필요한 평화와 일치의 교훈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에 빌어준 삼위일체의 축복은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믿음의 좌표와도 같은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은총(charis)은 인간을 해방의 삶으로 이끄는 동력입니다. 바울은 세상의 율법을 뛰어넘도록 이끄는 힘이 그리스도의 은총에 있다고 봤습니다. 하나님의 사랑(agape)은 새로운 세상을 구성하는 동력입니다. 낡은 질서의 세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돈과 힘이 필요하지만, 다가오는 나라를 향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친교(koinonia)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리입니다.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그곳에서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은 용기와 힘을 얻고, 자라나는 세대는 삶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합니다. 바울이 꿈꾸는 신앙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의 본문도 복음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서 기자와 달리,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를 예수의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여기에는 예수의 파송과 약속이 나옵니다. 마태는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모든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반복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모든 날에)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당부와 약속 위에, 사랑과 은총의 세계를 향한 역사의 운동이 펼쳐져 왔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밝히신 예수님,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 이 은총과 사랑 속에서 새로운 삶의 친교를 펼쳐가는 것이 우리의 길일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향한 우리들의 모색, 환경 주일을 맞아 품는 우리 모두의 새로운 다짐 위에,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파송사]

힘을 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지라도, 어둠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은 맥박치며 함께합니다. 사랑과 은총의 세상을 향한 삶을 살아가며,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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