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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가는 여정 ㅣ 2026-06-28 ㅣ 이세우

by phobbi posted Jul 05, 2026 Views 1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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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6-28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

(28:12-28, 17:16-34, 8:31-38)

 

이세우 목사

 

[인사]

 

   그간도 안녕하셨는지요? 작년 뜻깊었던 자매결연 30주년 기념행사와 예배드리고 1년 만에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우리 들녘교회는 별 변고 없이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인 숫자는 늘어나지 않고 있지만 교회는 이제 완전 숲을 이뤄 온갖 새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바꿨습니다. 심지어 꿩도 교회 마당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온갖 새소리에 잠을 깨울 정도입니다. 길고양이도 대여섯 마리씩 날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때로는 고라니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농사에만 거의 집중하며, 돈은 못 벌고 오히려 손해가 커서 그렇지 행복하게 잘 지내왔습니다.

  반가운 소식 하나를 먼저 보고드리면 그동안 먹거리계의 숙원사업이었고 이 땅의 생명 지기들의 염원이었던 GMO완전표시제가 올해 말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식용 GMO 수입국임에도 정작 식탁 위의 간장과 기름이 GMO로 만들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상황이 지속돼 왔었는데요, 1231일부터 된장, 고추장, 간장인 장류로부터 단계적으로 실시가 됩니다. 아직도 식품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만 흔들림 없이 잘 추진되도록 지켜내야 합니다. 이번 일로 정권이 바뀐 것을 실감도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우려스러운 시각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긴 합니다.

 

[진리의 여정]

 

   진리를 찾고 자유를 누리기 위해 동서고금을 통해, 철학자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학문인들, 종교인 등은 앞장서 노력해 왔고 인류의 염원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리가 자유를 주는 것인지, 아니면 자유가 진리를 주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오늘날 트럼프가 진리인지, 교황이 진리인지 세상은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습니다. 그 답을 오늘, 네 본문을 통해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백성들의 체험을 통해 말씀하고 계심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말씀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흔히 현장의 바닥에 진리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를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 속에서 솟아 나오는 성찰을 통해 얻게 된다는 사회적 교훈도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진리는 많은 경험을 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역사적 교훈에 제 마음을 담아 이 설교의 끝을 맺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본문에 대한 이해]

 

   욥을 통하여(욥기 28: 12-28) 기독교는 상거래, 장사꾼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과응보, 즉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착하고 올바른 사람에게는 건강과 행운과 번영과 행복을 주고, 나쁜 사람,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행과 고통을 주는 신은 가짜 신이고, 싸구려 종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16편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이 없다는 신앙고백의 찬미가입니다. 특별히 저에게도 가슴에 다가오는 말씀 한 구절이 있는데 소개해 드리면 6절 말씀 당신께서 나에게 떼어 주신 기름진 땅 흡족하여 마음에 듭니다.’(공동번역)라는 구절입니다. 오늘의 시편 본문도 다윗이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그 위기와 환난 속에서 지은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농사는 잘 안되고 망해도, 그래도 농사지을 땅이 있어 4계절 흙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보고서입니다. 안디옥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서 끝나는 바울의 두 번째 선교여행 중 오늘 본문은 지금 그리스의 수도인 아태네 도시에서의 선교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 31- 38은 오늘의 주요 본문입니다. 부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설교 본문과 제목을 알려달라고요. 그리고 본문은 네 곳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양파를 한창 캘 때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나도 정신이 없었을 때였었습니다. 우리 기장총회에서 쓰는 성서일과를 쓰겠다고 대충 넘기고 잊은 채 지나가다가 날이 다가와 살펴보니 아뿔싸 복음서 본문이 오늘 읽으신 곳입니다. 하필 골라도, 아찔했습니다. 자유의 상징인 향린교회에서, 자유인의 실체인 향린교회들 앞에서, 그것도 매주 듣는 말씀, 그래서 너무나 익숙하고 이미 잘 알고 계실 그 본문이 떡하니 걸릴 게 뭐랍니까? 그러나 가야지 어쩌겠습니까!

 

[자유인의 모습]

 

   바울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감옥에 잡혀가고, 그곳에서 매를 맞고 그런 비참한 상황을 겪으면 움츠러들고 꺾일 만도 한데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선교 의지는 불타올랐고 더 거침없이 선교여행을 이어갑니다. 이런 그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바울이 막무가내의 무대포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최고의 문명 도시, 철학의 도시, 학문의 도시였으며 각종 신, 신화들이 총화된 종교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 많이 가진 사람들, 그래서 자기 것을 잃기 싫은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 바울은 광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실용적인 선교전략을 세우면서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꿔나갑니다. 이후 사회의 지도층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의 토론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사람을, 신분을,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게 만납니다. 이런 계기로 그는 아레오바고 법정에서도 설교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곳에서 아레오바고 판사의 회심과 더불어 여성 등 몇몇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이윤과 이익, 신분 유지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바울의 진정성에는 당할 자가 없게 됩니다. 바울을 보면서 자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억울한 자들의 외침, 자유]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집 없는 설움과 나라 잃은 설움만큼 힘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보다도 더 큰 억울함은 원인도 모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일 겁니다.

  지금은 인공지능 AI시대입니다. 무엇이든 알아서 척척 해주는 초고속 초 편리 시대에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 생깁니다만 뜨거운 햇빛 아래서 풀을 뽑다 보면 저절로 새어 나오는 노래가 있어 소개를 드려보려고 합니다. 한 늙은이(꼰대)의 독백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바로 여러분도 잘 아시고 지금도 곳곳에서 부르고 계신 불나비라는 곡입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

하얀 꽃들을 수레에 싣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하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 자유여! ~기쁨이여! ~평등이여! ~평화여~!

내 마음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활화산이여~

뛰는 맥박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버릴것 같애.

친구야 가자가자 자유찾으러. 다행이도 난 아직 젊은이라네.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하늘 넓은 들을 찾아갈테야.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며 노동가요 '불나비'를 만든 음성철에 따르면 이 노래는 공장에서 열 시간 넘게 혹사당하던 야만의 시절에 맞서 어린 노동자들이 젊음을 불사르며 꿈을 찾아가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현실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담아 노래함으로써 노동자로서 꿈과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1981'불나비'가 처음 탄생하고 이후 '불나비'는 민중교회를 통해 애창되며 퍼져 나갔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대졸 초임 교사 임금이 40만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한 달 임금 8만 원은 노동자들에겐 살인적인 저임금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나온 작품인 이 노래, 주경야독하는 어린 노동자들을 "하얀 꽃들"로 표현을 했고 하얀 꽃들을 수레에 싣고"에서 '수레'는 그 시절 전국에 존재했던 200개 정도 야학을 가리키고 있다고 합니다.

 

[여유와 공백이 주는 자유]

 

  또 하나의 곡은 바로 바위처럼입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의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리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어느 집회현장에서 이 노래를 떼창으로 춤추며 부르는 모습을 본 어느 평론가가 '낙관의 노래''분노의 노래'만큼이나 큰 힘을 지녔다는 걸이라고 소감을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깊게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돌이 장악한 음악계에서 이런 흘러간 노랫말을 논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종의 부채 의식과 저항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에 흥얼거리는 것은 이 곡뿐인데 어쩌겠습니까. 이 노래의 매력은 대사회적 메시지라는 내용도 빠지고, 목적 의식적인 노래가 아니라는 것과 그럼에도 시선이 아래로 있는, 생활 속의 느낌을 노래한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부담감 없이 다가오면서 노동자들에게 자주 불리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도 여기에 부응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우문현답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은 수준 낮은 어리석은 질문에도 현명하고 정확하게 답변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이 같은 사자성어가 회식 자리에 동석하면 의미 있는 건배사로 변신하는데 이렇게 변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뜻으로 건배사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통을 중시하자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선창자가 우문하고 외치면, 나머지는 현답하고 외치게 됩니다.

 

[자유의 불편함]

 

  바울은 진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 경험은 현장에서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서를 통해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실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특히 하비루의 활동은 정당했습니다. 종살이, 노예 생활을 벗어나고자 고난의 행군을 한 그들이 존경스럽고 모범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슬프다 못해 절망적입니다. 전쟁광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악의 화신 자일뿐이고 그와 손잡은 트럼프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두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그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은커녕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세상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전쟁범죄자가 분명합니다. 어린이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누릴 것은 자유가 아니라 엄중한 국제법 앞에서 반드시 심판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고인이 되신 프란치스코 직전 교황은 생전 마지막 미사에서 "전쟁 대신 평화를 이루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레오 14세 현 교황은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라며 예수는 폭력을 거부했다고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이란 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며, "전능에 대한 망상이 전쟁을 부추긴다."라고 지적하고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라고 강론했습니다, 그러면서 권위의 정당성은 힘이 아니라 지혜와 덕목에서 나옴을 밝혔습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고, 하나님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장사꾼 종교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더 안타깝고 슬픈 것은 이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각 나라는 가만히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농민에게 자유를! 농산물 가격 보장제를 실시하라!]

 

   한국농촌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계속 어려운 이유도 미국의 횡포에 기인하고 있음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GMO 콩을 수입하라고 압박을 가하는 현실입니다. 미국만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양파가격이 폭락해서 애써 키운 양파를 갈아엎고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 수입 양파 때문입니다. 저도 큰 손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과 무역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기후 위기를 더욱 가속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농사만 짓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과학적 보고서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농부는 봄이 되면 그는 씨앗을 삽니다. 고추 등 각종 모종을 사고,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비닐을 사고, 농기계에 넣을 경유도 삽니다. 트랙터가 고장 나면 부품도 사야 합니다. 농부가 사는 물건들의 가격은 누가 정할까요? 종자 회사가 정하고, 비료 회사가 정하고, 농약 회사가 정하고, 제조업체와 판매업체가 정합니다. 농부는 그 가격에 대해 협상할 수 없습니다. “비료가 너무 비싸니 절반 값에 팔아주세요.” 그렇게 말한다고 비료 회사가 가격을 깎아주지는 않습니다. 농부는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시장이 정한 가격을 그대로 내야 합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어 농산물을 수확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농부가 판매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 가격을 스스로 정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배추, 무가 풍년이면 가격이 폭락합니다. 사과, 배가 많이 생산되면 가격이 떨어집니다. 고추, 양파 등이 많이 나오면 값이 내려갑니다. 농부는 올해 비료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많이 들었으니 생고추 1kg2만 원을 받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생산비가 얼마나 들었든, 시장이 정한 가격에 팔아야 합니다.

   심지어 수확하기 전까지는 얼마에 팔릴지도 모릅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은 생산하기 전에 대략적인 판매가격을 계산합니다. 식당도 메뉴 가격을 정해 놓고 손님을 받습니다. 변호사도 수임료를 정합니다. 의사도 진료비 체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1년 동안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놓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상품 가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대체로 가격을 통해 움직입니다. 그런데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과 가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강하고, 가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농부는 생산 과정의 거의 모든 비용을 감당하지만, 정작 자신이 생산한 결과물의 가격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위험은 농부가 부담하고,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 농업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자유가 없어. 완전 노예나 다름없지촌로 한 분께서 밭두렁에 앉아 기침을 쿨럭이며 하시던 말씀이 귓가에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가격 보장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떠들고 있는데 먹히지를 않고 있습니다.

 

[공공성 자유 회복]

 

   오늘, 네 본문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욥도 지혜는 모든 생명체에게 감추어져 있는데 특히 작은 자들의 연대를 통해 지혜와 명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바울도 늘 시대의 부름과 역사적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진정한 자유의 실천과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자들, 힘없는 자들의 외침이, 약자들과의 연대가 참자유임을 성서 전체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공성의 자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늘 거리기도회와 눈물과 탄식의 현장마다 찾아다니며 위로와 격려, 연대를 실천하고 계신 향린교회 교우들이야말로 참 자유인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자유인이신 여러분들 앞에서, 진리의 전당인 향린교회에서 올해도 설교할 수 있음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인 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많이 배우고, 느끼고 내려가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내내 건강하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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