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4.
영성을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신학과 대화해야 한다. 종교사학자이자 신학자인 필립 셸드레이크가 <영성과 신학(Spirituality and Theology)>에서 썼듯, “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말로 표현하려는 시도(신학)와 그 이해의 빛 안에서 살아가려는 노력(영성)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을 깊이 공부하려면 침묵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에 대한 말과 글은 신의 침묵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다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을 향한 신학적 탐구에서 말과 침묵은 서로에게 기대며 서로를 정의한다. 침묵 없이 말이 존재할 수 없듯, 그 말을 에워싸고 지키며 때로는 감추는 침묵 없이는 신에 관한 말도 존재할 수 없다. 말과 이해를 넘어서는 신을 향해 신학의 방향을 잡을 때, 침묵은 신에 관한 지나친 말과 글을 다스리는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영성에서 신학적 접근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영성을 교의신학이나 윤리신학의 부속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한다. 신학과 영성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엄연히 구별된다. 신학이 신앙의 대상을 연구하고 분석한다면, 영성은 그 대상이 인간의 종교적 의식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반응에 주목한다. 나는 이러한 학문적 구분을 유지하면서도, ‘조직신학’보다 ‘구성신학(constructive theology)’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신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구성신학은 “모든 신학적 언어가 지닌 우연성, 가변성, 일시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구성된 현실’이라는 특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신학의 본질인 상상력과 구성적 작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히 침묵을 논할 때 신학의 과제는 전통적인 교리와 도그마의 정합성을 맞추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경험이자 현상으로서의 침묵은 신에 관한 담론 체계에 끼워 맞추기 위해 특정 구조 안에 가두거나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학은 침묵이 신에 관한 말과 글 사이에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멈춤과 단절, 균열과 틈새, 그리고 파열에 기꺼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결국 신학자 숀 코플랜드(M. Shawn Dopeland)의 말처럼, “신학은 인간이라는 조건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씨름하는 우리에게 신이 자비로이 베푸는 은총의 행위로부터 솟아난다.”
조민아 지음/이은진 옮김, <침묵하는 신과 침묵당하는 사람들>(비아토르, 2026. 06. 15. 초판 1쇄 발행),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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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신학의 깊은 대화는
말과 침묵의 조화를 통해
앎과 삶의 괴리를 치유하고,
앎과 모름의 관계를 심도 있게 성찰하게 함으로써
신학과 영성 모두를 더 깊고 넓은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영성은 신학을 치유하고,
신학은 영성을 더 세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향린 목회 60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