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2.
동중정의 지혜
‘동중정정중동(動中靜靜中動)’의 지혜라는 것은 애초 동물적 생존 경쟁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개구리가 혀를 길게 내밀어 파리를 잡을 때나 꿩을 향해 총알처럼 낙하하는 매의 동선(動線)을 살펴보라. 수련이나 수행 일반에도 이런 이치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공부의 첨병(尖兵)은 균형의 감성인 것이다. 다른 기회에 자주 언질했지만, 이 몸의 균형감으로 공부와 수행적 실천 일반을 해명하게 된 것은 나 개인의 매우 사적인 체험들로부터 유래한다. 중용(中庸)이나 중도(中道)에 이치가 있다면, 그것은 몸이 추구하는 원초적 균형감과 궤(軌)를 같이할 수밖에 없고, 역동적 균형(和)의 길은 결국 진실의 길과 관련될 것이다. 가령 ‘선(禪)은 속도!’라고 했을 때에 이 발화자가 깨치고 있는 속지(速遲)의 살아 있는 균형을 상상해보라. 그렇기에, 아득한 슬픔 속에 부대낄 때에도 마음 한편은 하얗게 비어 있어야 한다.
김영민 지음, <그림자 없이 빛을 보다>(글항아리, 2023. 7. 7. 초판발행),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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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정말 그렇다.
삶의 기술이란 언제나 균형감각 위에 성패가 달려 있다.
공부도, 목회도 그 무엇도 다 그렇다.
치우쳐서는 안 된다.
매몰되는 것도 안 된다.
집중하는 것과 매몰되는 것은 다르다.
아득한 슬픔 속에 부대낄 때도 하얗게 빈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 향린 목회 60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