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6. 27.
이웃들도 모두 가난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서로 도우며 살아갔다. 음식을 나눠 먹고, 전당포 이용법을 가르쳐 주고, 서로 아이를 맡겼다. 행정 기능이 미약하던 시절이라 방범이든 방재든 공중위생이든 동네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어떻게든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면 어른들이 ‘불조심’을 외치며 동네를 돌았고, 일요일 아침이면 온 동네 사람이 총출동해 도랑을 치웠다. 아이들은 머리를 짜내 놀이를 발명하고, 해 떨어질 때까지 골목이나 신사 경내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가난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조금도 불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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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젠가부터 일본인은 궁상맞아졌다. ‘궁상맞다’는 것은 경제적인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이다. 남의 부유함을 시샘하는 모습도 궁상맞고, 얼마 안 되는 내 재산을 꽁꽁 숨겨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 태도 역시 궁상맞다. 무엇보다도 ‘공공재’로서 모두가 공유하는 부에서 자기 ‘몫’을 최대한 챙기려는 행동이 가장 궁상맞다.
아이러니하게도,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서민의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은 더 궁상맞아졌다. 경제 고도성장의 혜택을 남보다 먼저 누리며 냉장고나 TV나 자가용을 소유하게 된 가정들은 집 주위에 담장을 두르기 시작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웃의 ‘질투와 악의에 찬 눈빛’을 차단하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쉽게 드나들던 이웃집인데 어른들 얼굴에 미묘하게 성가신 기색이 비쳤고, 쌀이나 반찬을 빌려주거나 나누는 일도 사라졌다. 나아가 교외에 더 나은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차례차례 동네를 탈출하면서, ‘가난한 공화정’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돈이 생기면 오히려 궁상맞아지고 상호부조 정신이 사라지고 공동체는 텅 비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커먼즈의 재생: 공공, 환대, 관용은 어떻게 회복되는가?>(도서출판 유유, 2026. 2. 14. 초판 1쇄 발행), 159-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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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 대한 우치다 선생의 성찰인데,
한국도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도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더 궁상맞은 삶으로 진입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같은 책에서 우치다 선생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일본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부유층일수록 그리고 권력 주변에 있을수록 궁상맞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러한 것 같다.
권력을 쥘수록, 부자가 될수록 공공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공공재를 더 사유화하려고 든다.
온 사람들이 이런 권력과 부를 누리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사다리 꼭대기에 서려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빈털터리에 궁상맞은 사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가난도 극복의 대상이지만,
진짜로 넘어서야 하는 것은 바로 궁상맞은 사회인 것이다.
- 향린 목회 60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