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6. 24.
듣기란 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귀기울여 잘 듣는 태도, 그 긴밀한 수동성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물론, 내가 말해온 ‘수동적 긴장’의 태도, 혹은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의 듣기는 그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말을 죽인 침묵의 성성(醒醒)함 속에서 섬모처럼 마음을 움직이면서 상대의 말에 긴절히 응대하는 가운데 쓸모 있는 말이 융통된다는 사실은 합리 이상의 대화를 꿈꾸는 자에게 이윽고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뜻하는 ‘듣기’는 극히 능동적, 생산적, 창조적인 것이다. 이 듣기가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이유는, 단적으로, 그것이 그간 은폐되거나 억압된 것, 놓쳤거나 흘린 것들까지 집요하고 부드럽게 끌어내어 말하게 하는 현실적 계기와 동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마치 “풍경이 아무렇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말은 그 말의 풍경의 비밀을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듣기는 단순히 말하기를 위한 절차나 그 배경 장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듣기는, 화자의 몸을 깨우고, 그 정신을 섭동케 하고, 그 무의식을 해방시켜서 자기 ‘아닌’ 자기, 자기보다 ‘큰’ 자기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이 듣기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한 입각지가 아니다. ‘동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듣기’는 그 동무의 존재 자체를 살피고 키운다. ‘듣는’ 내 앞에서 말하라, 내 동무들이여 – 네가 누구인지 알게 하리라!
김영민 지음, <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최측의 농간, 신판 1쇄 발행 2018. 11. 15.), 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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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19절)
나이가 들수록 꼰대가 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덜 꼰대가 되는 유일한 방식은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는 속히 하는 것이다.
“듣지 않고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듣는 동무가 되는 길 속에
새로운 실천과 연대의 원초적 가능성이 생성될 수 있다.”(위의 책, 215)
- 향린 목회 59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