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6. 14.
공자는 ‘군자육예(君子六藝)’라고 하여 예절, 음악, 활쏘기, 말 타기, 글 읽기, 셈하기를 들었습니다. 어째서 음악 연주와 감상이 육예에 들어갈 만큼 중요했을까요? … 저 같은 범인이 선현에게 감히 무슨 말을 덧붙인다는 것이 송구스럽지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시간의 역동 속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시간 모델로는 음악이 들리지 않습니다. 들릴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도, 모차르트, 바흐의 음악도 단독의 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미적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이른바 하나의 곡을 일생 동안 연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갖가지 행동과 말의 진짜 의미는 그 곡을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즉 관뚜껑을 덮은 후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죽은 후에 비로소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육예의 하나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시간 의식(意識)을 갖기’, ‘인간은 시간 속의 존재라는 것을 알기’가 지성의 기초라는 것을 고대의 성현은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치다 타츠루 지음/박순분 옮김, <하류지향>(열음사, 2007. 10. 25. 초판 1쇄 발행), 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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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 속의 존재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도 무한한 시간이 아니라 유한한 시간,
고정된 시간이 아니라 변하는 시간 속의 존재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나가 내일의 나와 다를 것이다.
어제의 나가 오늘에는 있지만,
오늘의 나가 내일에는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 향린 목회 58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