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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ㅣ 2025-08-01 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Jun 11, 2026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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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8-01

2025기독청년반빈곤연대활동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6:7-13)

 

한문덕 목사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누가복음서 617절부터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에 버금가는 평지설교가 등장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많은 무리의 제자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설교를 시작합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평지설교를 하셨을 때,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고 보도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남쪽부터 북쪽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따르려고 모여든 무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첫 마디는 너희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가난했을까요?

  19861월 말에, 막달라 맞은편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의 한 개펄에서 길이 8.2미터, 폭이 2.3미터 되는 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배는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67년까지 사용하던 배였고, 바로 예수와 열두 제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갈릴리 호수의 그 배와 같은 배였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매우 낡은 배들을 재활용해 조립하였는데, 나무의 절반은 배를 만드는 목재로서는 부적절한 대추나무였습니다. 이 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목재는 최소 일곱 가지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배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농사에 적절한 지중해성 기후와 호수의 풍부한 수자원과 물에 사는 생명체들, 그리고 비옥한 토지로 풍성한 결실을 낼 수 있던 갈릴리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 나무 저 나무 쪼가리를 가져다가 이렇게 조잡한 배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까요?

  다들 아시듯이 당시 유대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로마가 세운 괴뢰정부인 헤롯 가문은 로마 제국의 주구로서 이스라엘의 로마화에 앞장섰습니다. 로마를 비롯한 모든 고대 제국은 피식민지 백성에게 조공을 받고, 노역을 시켜 자신의 나라를 유지해 왔습니다. 로마 정부는 정복한 나라의 땅을 조사하고 각 지역의 농민들에게 땅의 소산물 중 일정한 세액을 매겨 곡식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당시 농민들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는데, 보통의 농민은 무척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소작농이었고, 땅을 빌려 쓴 지대(地代)와 국가가 요구하는 세금을 내고 나면, 빠듯이 생계를 유지할 정도만 남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꾸던 북쪽의 갈릴리 농민들, 그리고 남쪽의 유대 농민들은 로마와 헤롯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전 십일조만 내던 좋은 시절은 가고 로마와 헤롯에게 이중삼중의 착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대왕은 가이사리아 신도시를 건설해 항구, 도로, 교량 등 전방위 사회 기반 시설을 세우고, 예루살렘 성전을 확장하여 상업화와 도시화를 통한 로마화를 헌신적으로 수행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죽고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와 베뢰아를 맡았을 때 갈릴리에도 로마화의 바람이 세차게 밀어닥칩니다. 헤롯 대왕의 후계자로 유대 전체를 물려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헤롯 안티파스는 유대 땅 전체 4분의 1도 못 미치는 땅의 통치자로 임명되자, 유대 전체의 왕이 되기 위해 로마에게 잘 보이기 위한 첫 사업으로 세포리스를 수도로 정하고 로마식 도시를 건설합니다. 세포리스는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에서 걸어서 한 시간 삼십분 정도면 갈 수 있는(6.5km) 곳인데, 헤롯 안티파스는 그 도시를 아우토 크라토리스라고 부릅니다. 그 뜻은 세계 정복자입니다.

  기원후 14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되자 이번에는 새로운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갈릴리 호숫가에 티베리아스라는 새로운 도시를 또 건설합니다. 안티파스는 이렇게 로마식 도시인 세포리스에서 세금을 뜯고 또 이제는 티베리아스에서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물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열심히 일궈 놓은 농작물을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만드는 잔인한 짐승이 있었는데 바로 여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켜 여우라고 불렀으며(루가 13:31-33), 헤롯 안티파스 치하에서 갈릴리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배 한 척 제대로 만들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아내도 버리고 자식도 나 몰라라 하는 헤롯에게 직격탄을 날렸던 이가 세례요한이었고, 당시 민중들은 이 새로운 지도자를 잃어버리고 갈 곳 몰라 방황하던 중이었고, 기본적인 생존도 보장되지 않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십일조와 세금, 조공을 통한 과중한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던 농민들은 점차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고, 결국에는 유산을 다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주전 63년부터 37년까지 이어진 로마의 정벌과 전쟁이 몰고 온 파괴와 학살과 약탈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후 로마 군대의 양식을 마련하기 위한 헤롯 병사들의 약탈로 마을 전체가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장기 집권 기간의 중반(40년대 후반)에 혹독한 가뭄과 기근이 찾아왔고, 이것은 최저 수준의 삶을 살고 있었던 농부들에게는 설상가상의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조세 감면을 부르짖으며 들고 일어섰는데, 잔인한 헤롯은 무력으로 진압하고(유대 전쟁사 2.4, 유대고대사 17.204) 대규모 건축을 이어갔으며, 계속해서 많은 사람을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고, 도적 떼의 수가 증가했으며, 언제라도 사람들은 예언자적 저항운동(주후 1세기 후반)에 투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이런 시기를 틈타 채권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부유한 제사장 가문과 헤롯 가문도 이런 짓들로 이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토라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임에도 농민들에게 필요한 곡식과 기름에 높은 이자를 부과했고, 그래서 농민들을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주후 66년 여름,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예루살렘을 장악한 뒤 처음으로 한 일이 빚 문서를 보관해 놓았던 서고를 태워 없앤 것이라는(유대전쟁사 2.427)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님 당시 농민들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벌이신 하나님 나라 운동은 로마와 헤롯, 유대 기득권 종교 체제로부터 삼중 착취를 받아 해체되던 마을을 다시 되살리는 일종의 마을공동체 회복 운동이었습니다. 갑자기 급격한 가난으로 내몰리자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같이 거칠어지고, 마을 사람들끼리 다투고 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서 서로에게 불신이 쌓여갔습니다. 마태복음서의 산상설교, 누가복음서의 평지설교에 나오는 상호 존중과 인간의 존엄성을 세워 주는 말들은 모두 이렇게 거칠어진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3).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자매를 가리켜 얼간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불려 갈 것입니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5:2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앙갚음하지 마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십시오.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당신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5:38-42, 44).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10).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25:40, 45)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에게 당신들이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들의 자아정체성을 견고하게 세워 줍니다. 신분 사회에서 귀족들만 누리던 명예와 자존감을 가난한 이들에게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주인공들이 되어 갑니다. 예수님의 격려와 지지로 자존감을 회복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고, 상호 간의 신뢰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 갈릴리에 빛이 비추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서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를 세상에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이제 둘씩둘씩 짝을 지어 세상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회개의 선포, 귀신 축출, 병자 치유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이고, 귀신 축출은 인간을 사로잡는 모든 악한 것들을 쫓아내는 것이며, 치유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파송 받을 때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보호하는 옷과 신발, 그리고 지팡이뿐입니다. 그런데 옷은 두 벌도 아니고 달랑 한 벌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장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신발과 지팡이는 뱀이나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는 도구입니다. 즉 제자들은 험한 오지나 위험이 있는 곳에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도 없고, 여분의 음식이나 옷, 음식을 담을 주머니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보다 물질적 혹은 정신적 장비를 더 신뢰하는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장비를 믿으면 그들이 전하는 구원의 소식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믿은 방랑자였습니다.

  빵을 가지고 갈 수 없었기에, 제자들은 굶주림과 취약한 상태에 늘 머물러야 했습니다. 주머니가 허락되지 않는 것은 당장 먹을 빵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도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런 떠돌이 선교는 당시 견유학파와 비교되었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무시했던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자급자족하며 스스로 벌어먹는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배낭을 메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 제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을 담을 배낭이나, 돈을 넣을 전대, 빵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다 준비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는 대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생명을 살리고, 아픈 이를 고치고, 불안과 좌절, 절망과 체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해냈을 때, 언제나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주어졌습니다. 머물 곳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의 선교를 돕는 이들을 어디에나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첫 교회는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전도자들과 그를 자기 집에 들여서 재워주고 먹여주는 이들의 협조 속에서 왕성하게 성장해 갔습니다. 선교여행을 하는 제자들의 옷차림,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지난 이틀간 여러분들이 하신 일들은 아마도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의 모색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읽으셨는지 모르겠는데 만일 세상이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이고 그러나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마을의 모든 부 중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 사람입니다. 74명이 39%20명이 겨우 2%만 나눠 가졌습니다. 이 마을의 모든 에너지 중 20명이 80%를 사용하고 있고, 80명이 20%를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75명은 먹을 양식을 비축해 놓았고 비와 이슬을 피할 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25명은 그렇지 못합니다. 17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 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100명 중 7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마을 사람들 중 1명은 대학 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읽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괴롭힘이나 체포와 고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48명보다 축복받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공습이나 폭격, 지뢰로 인해 다치거나 죽고 무장단체의 강간이나 납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은 20명보다 축복받았습니다.”

 

  자, 지금 여러분의 지갑에 돈이 있나요?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100명 중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사는 법]

 

  2015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사망 원인 중 두번째로 흔한 질병이 심장병입니다.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대체로 담배를 피우지 말고,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고, 주기적으로 운동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야 비만,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혈증을 줄일 수 있고,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요?

  196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의 로세토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로세토에서는 유달리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로세토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즐겼고, 비만인 사람들도 매우 많았습니다. 의학적으로 심장병 위험인자가 많은 지역에서, 실제 심장병 사망은 오히려 적게 발생한 것입니다. 조건이 비슷한 1.6킬로미터 떨어진 빙고라는 마을에 비해 사망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1964, 이 마을의 이러한 현상을 연구한 사람들은 <미국의사협회지>특이하게 낮은 심장병 사망률: 펜실베니아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냅니다. 그리고 의학 논문에 보기 드문 다음과 같은 글을 씁니다.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세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는 소수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

 

  이 마을의 특별한 점 하나는 니스코 신부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니스코 신부는 마을이 성장하기 위해 정치적인 참여와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세토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얻어 투표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적극 권장하고, 마을을 단장하기 위해 씨앗을 나눠주며 꽃을 가장 예쁘게 키운 사람에게 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지역 채석장의 근로자들이 1시간 당 8센트라는 극단적인 저임금으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채석장 사장을 만나 임금인상을 위해 협상을 시도합니다. 협상이 결렬되자 니스코 신부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스스로 노조 위원장이 되어 파업을 주도해서 로세토 채석장 근로자들이 1시간당 16센트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니스코 신부를 중심으로 로세토 주민들은 마을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 죽으면 함께 죽음을 애도하고, 부모가 사망하면 그 집의 아이들을 마을 모두가 돌보았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식량과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온 마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파산한 이웃을 돕는데 함께 하였습니다. 이 마을주민들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의 분위기가 심장병을 막는다는 사실은 울프 박사의 위대한 논문 로세토 효과: 50(1938-1985) 동안의 사망률 비교를 통해 과학적 사실로 증명됩니다.

  하와이 군도 북서쪽 끝에는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작은 섬 카우아이가 있습니다. 이 섬은 1950년대에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대대로 시달려 온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고,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청소년 비행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섬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마치 불행한 삶을 예약하는 것과 다름 없었는데, 1954년부터 이 섬을 대상으로 하나의 연구가 진행됩니다. 연구자들은 1955년에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추적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얻은 연구 결과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손 가정의 아이들일수록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며, 부모의 성격이나 정신건강에 결함이 있을 때,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나 동료와의 관계가 좋은 아이일수록 자율성과 자기 효능감도 좋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연구의 자료 분석을 담당했던 심리학자 에미 워너 교수는 실험 대상이었던 833명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다시 살펴보았는데, 201명 중 3분의 2는 문제를 일으켰지만, 3분의 1에 해당하는 72명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심지어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보다 더 모범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에미 워너 교수는 40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확립하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성장한 아이들은 예외 없이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아이 곁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기독 청년 여러분! 참된 신앙을 지닌다는 것은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고백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팡이를 든 사람이 모세였고, 그가 들었던 하나님의 지팡이는 애굽에서 신음하던 이들을 자유의 백성으로 이끌어내었습니다. 지팡이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우리들의 참된 믿음과 도전은 분명 이 험악한 세상을 더 좋게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틀 동안 참으로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여러분 곁에 계신 주님과 함께 늘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와 축도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때로 홀로 머물 줄도 알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고 만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반빈곤연대활동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가난하여 더욱 더 진하게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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