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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기독교 신앙(강단교류) ㅣ 2026-04-19 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Jun 11, 2026 Views 1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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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4-19

향린공동체 강단 교류(들꽃향린)

“AI 시대의 기독교 신앙

(35:30-36:1, 4:14-16, 12:54-56)

 

한문덕 목사

 

 

 

 

[인사와 소개]

 

  안녕하세요! 향린교회 한문덕 목사입니다. 20121111일 여러분 앞에서 신앙을 새롭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14년 만에 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향린교회 부목사로, 오늘은 담임목사로 여러분을 뵙게 됩니다. 제가 향린의 담임목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부름을 받게 되어서 2024113일에 부임해서 이제 1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향린교회에 온 지 한 달 만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일으켰습니다. 교회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광화문을 가득 메운 민주시민들과 내란의 강을 함께 건너느라 정신없이 일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조금씩 전반적인 목회의 일상들이 안정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부임한 이후로 향린교회는 무려 다섯 분의 장로님을 새로 세웠고, 세 분의 목사 안수를 거행했으며, 교육 부서 담당 교역자 세 분을 청빙했습니다. 미뤄왔던 교회 헌당 예배를 드리고, 70주년을 맞이하며 3년 계획으로 진행하는 미래선교위원회의 여러 활동들을 이어나가고 있고, 작년까지 도농선교협력 30주년 행사, 국악선교회 예향 창립 30주년 기념 토크쇼 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행사들을 했습니다. 이 모든 분주함 속에서도 제가 놓치지 않으려 했던 본질은 변화하는 시대 속의 교회는 어때야 하는가였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기존의 목회와 선교를 잘 이어가면서도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교회의 전반적인 구조를 다시 점검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주어서, 더 단단하고 든든한 목회와 선교가 되도록 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미래가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저는 한국 사회와 개신교의 현 상황 속에서 우리 향린교회를 비롯한 향린 공동체가 나아갈 길에 대한 나름의 밑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생명사랑교회에서 목회했던 약 9년의 경험과 최근 3-4년간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고민하며 그린 밑그림입니다. 오늘 저는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시대의 전환 앞에서]

 

  먼저 누가복음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자연과학적 상식을 가지고,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이 시대에 알맞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은 분간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라고 번역을 했고, 새번역 성경은 왜 이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카이로스 즉 물리적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적인 때를 상징하는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전 세계는 결정적인 전환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적 변화의 주된 현상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기후재앙, 둘째는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입니다.

  스위스 제이콥스 재단(Jacobs Foundation)2050년의 미래를 네 가지 유형으로 전망합니다. 한쪽 끝에는 붕괴가 있고, 다른 극단에는 완전 자동화가 있습니다. ‘붕괴(Collapse)’란 물질적 풍요와 자유가 제약받고 기존의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폭염, 가뭄 등이 식량과 물 부족을 초래하고 지역과 국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이로 인해 기후난민을 발생시키거나 또는 기후 관련 질병이 확산되면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치는데, 이런 붕괴는 예기치 않게 다가오지만 피폐해진 세계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완전 자동화란 기술의 성과를 모두가 누리며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어 창조적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화려한 미래이지요(김병권 지음, <AI와 기후의 미래>, 30-34.). 기후 재앙으로 인한 붕괴와 인공지능으로 인한 완전 자동화 사이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맞이하게 될까요?

  우리는 지난 2020년부터 약 3년의 시간 동안 전대미문의 세계적 전염병을 겪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인류는 기후재앙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계기를 마련했고, 당시 한참 논의되던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곧바로 직면해야 했습니다. 지금 인류는 여전히 기후재앙의 위기 앞에 놓여 있는데,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달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에 가까운 낙관론과 사회적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등 비관론을 모두 지니면서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를, 또 많은 이들에게는 깊은 불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의 변화와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과연 종교는, 더 좁게 개신교는, 아니 우리 향린 공동체 교회들은 어떻게 주님의 몸된 공동체를 세워갈까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사랑교회에서의 목회 경험]

 

  제게 생명사랑교회는 첫 담임목회지였습니다. 2015년 부임했을 때 교회는 창립한 지 3년이 갓 지나 있었습니다. 출석교인은 50명에서 60명 가량 되었지만, 새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가 그러하듯, 월세를 내야 하는 다수의 상가교회가 지니고 있는 일반적 어려움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어디에든 간다는 다소 순진한 마음으로, 그리고 내가 아니면 또 누가 가겠는가라는 약간은 오만한 마음으로 갔는데, 담임 목회를 시작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저는 엄청 커다란 벽을 만난 듯 매우 답답하고 막막한 경험을 했습니다. 교회 주변에는 다른 교회들이 엄청 많았고, 철 지난 노방 전도 같은 것으로는 부흥을 꿈꿀 수 없는 시대에 상가건물 지하교회에서의 목회는 별다른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제자 몇이 교회에 와서 등록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종종 방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9년 초에 교인들과 함께 교회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을 짜고, 영상을 찍고, 성서 강의들을 올리는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목회를 통해 돌파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1년간 준비를 해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유튜브로 예배 영상을 비롯하여 성서 강좌를 올리고 SNS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사랑교회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이 되자 코로나가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발생하였고, 곧 이어 비대면 예배가 이어졌습니다. 생명사랑교회는 온라인으로 목회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 덕에 코로나 3년의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고, 오히려 그 기간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월세 지하를 탈출하여 지상 5층에 작은 예배당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목회하기 어렵고, 교회가 안 되는 시절이라고들 하지만, 지난 생명사랑교회의 목회 경험으로 보자면, 차근차근 잘 준비된 교회는 어떤 어려움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작았기 때문에 오히려 위기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고, 생명사랑교회도 향린공동체와 거의 같은 정관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목회 운영을 하였기에 코로나 위기에서도 서로 합심하며 격려하며 오히려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사회와 목회 환경의 변화]

 

  코로나를 거치면서 성큼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은 세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목회의 방향과 방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상 공간의 현실화는 기존 교인들의 신앙 형태를 바꾸게 했는데, 그것은 신앙의 유연화 및 다변화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국 사회는 매우 빠르게 세속화를 겪고 있습니다. 비종교인이 60%가 넘습니다. 2024년에는 종교인구가 다시 살짝 반등했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종교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종교적 인간이 기존의 종교 제도에서 누리던 많은 것들은 이미 문화와 예술, 스포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교가 생겼다는 말이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 온라인의 활성화는 종교의 상품화 과정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제는 교인들이 예전과 같은 내 교회라는 소속감과 정체성이 유지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TV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듯, 이제 온라인 동영상으로 나오는 수많은 신앙 관련 영상들을 보면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예배와 설교를 찾아가는 매우 새로운 형태의 교인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한 교인이 여러 교회 아니 여러 종교에 소속될 수 있는 다중 소속의 시대가 되었고,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 프로그램들을 찾아 부유하는 떠돌이 신자가 200만도 훨씬 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온라인 환경이라는 것은 먼저 선점한 소수가 독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정보가 일정한 공간에 한정되어 있을 때는 각자의 영역에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정보가 온라인을 타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흘러 다니는 순간, 그 정보를 잘 사용하는 가장 뛰어난 몇 사람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매우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양극화가 일어나듯, 교회에도 이제는 그런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수의 대형 교회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교회를 제외하고는 다수의 교회가 점점 시들어지는 현상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캐나다 연합교단의 허원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하여 캐나다연합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겪는 현실을 들려주었는데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199276만 명이 넘었던 교인들의 숫자가 2035년에는 11만 정도로 줄 것으로 예측한 보고서를 내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쇠퇴는 더 이상 서구 사회의 현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적 뿌리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더 급격한 쇠퇴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놀랍고도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은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쇠퇴와 AI의 부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제가 생명사랑교회에서 목회하면서 2019년에 벽을 만났지만 그것을 무사히 넘겼다면, 20221130일에 탄생하여 접하게 된 챗GPT(ChatGPT)와의 만남은 또 한 번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목회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공지능의 탄생과 변화를 보면서는 전혀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픈 AI에서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떤 단계로 발전할지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5단계인데, 첫 번째는 인간과 대화하는 단계 즉 챗봇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추론의 단계이고, 셋째는 협력자 즉 에이전트로서 실행하는 단계, 네 번째는 인간의 창의성마저 넘어서는 혁신의 단계,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조직의 단계입니다. 거대 언어 모델을 학습하여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챗봇의 형태로 등장한 것이 2022년 말인데, 올해 초에 벌써 세 번째 단계인 협력자 모델이 등장했고, 추론의 단계는 이미 모든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확보했습니다. 엔트로픽이 최근 개발한 클로드 미토스라는 인공지능은 압도적인 성능으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서 모든 보안을 뚫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공개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나온 다양한 인공지능들은 인간이 산출해 낸 언어 자료에서 학습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피지컬 AI가 발달하고, 인간이 산출해 낸 고급 지식에도 학습이 일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제 인간이 아는 모든 것을 배운 인공지능이 자연과 문명 세계와도 직접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축적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인간지능을 훨씬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의 병렬 처리와 인간 뇌의 병렬 처리는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뇌보다 뛰어날 수 있지만, 뇌는 적은 에너지로 복잡하고 유연한 인지 능력을 발휘하는 초고도 비정형 병렬 시스템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지능과 달리 하나의 인공지능이 습득한 것을 동시에 전 세계 모든 인공지능이 공유하는 다중 실현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평범한 인간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인공지능의 발달이 모든 인공지능의 발달을 동시에 불러 오는 이 현상은 영화에나 나오는 스카이넷과 같은 슈퍼컴퓨터가 다스리는 세상을 예측하게 만듭니다. 또한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이 비록 인간이 만들었지만, 기존의 모든 도구를 뛰어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제 지구 위 인류는 그동안 단 한번도 겪지 않았던 사태, 즉 인간과는 또 다른 지능과 공존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고,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이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즉 그동안 인간 문명을 움직여 온 언어·정보·제도·권력 구조 전체가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알고리즘에 따라 재편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지능보다 더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인간과 지구 생명체들의 안전을 자동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과제는 인공지능을 어떤 방식으로 인간지능 아래 두어서 인공지능의 특별한 능력의 도움을 받아 더 좋은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 신앙]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실 때, ‘브살렐이라는 사람을 지명하여 부르십니다. 그런데 31절을 보면 놀라운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을 가득하게 하셔서 지혜와 총명 뿐만 아니라 지식과 온갖 기술을 갖추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Hokmah)’는 단순히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손끝의 정교함과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숙련된 기술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기술 그 자체를 악하거나 세속적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성막, 즉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때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기술의 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이 동시에 창조 질서의 지혜도 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는 현대판 브살렐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도구로 자기만의 바벨탑을 쌓아 탐욕을 채우려 하겠지만, 신앙인은 이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막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몸인 창조의 세계를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인쇄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지식의 독점이 깨질 것을 두려워한 이들은 그것을 악마의 기술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그 기술을 이용해 성경을 보급했고, 종교개혁의 불길을 당겼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기계를 만든 것은 제가 기계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앞으로 사람은 기계를 발달시켜 유생·무생(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이 없어지는 지경에 갈 것이다. 이것을 기계 문명이라 욕하지만 이것은 아직 얼치기 기계가 돼 그렇지 정말 참 기계, 생명의 기계 그대로 되는 자리에까지 가면 참 신비로운 지경에 갈 것이다. 참 신비로우면 신비 아닐 것이다. 기계가, 못 만든 사람에게는 조화지만 만든 자신에게는 조화될 것 없다.”(함석헌 전집 2, <인간혁명의 철학>, 87.)

 

  결국 문제는 우리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참 기계, 생명의 지능으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서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지거나 온갖 세상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라고 그래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본문을 보면서 인공지능에게 밀리지 않는 대체 불가능한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대체불가능이라는 책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세 가지 영역으로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 ‘비판적 사고’, 그리고 사회적 관계성을 꼽습니다. 이 세 가지를 기독교 신앙의 언어로 재서술해 보자면 AI는 기존 데이터를 재조합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도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AI는 그저 효율성만을 따르겠지만, 신앙인은 하나님의 생명과 평화와 정의에 따라 과연 옳은가 그른가를 비판적으로 따져 볼 것입니다. AI는 묻는 것에 정보를 전달할 뿐이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나눕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서 몸에 갖추어진 각 마디를 통해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사랑 안에서 건설되는 하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AI는 네트워크를 통해 그저 접속할 뿐이지만, 우리는 사랑으로 접촉해야 합니다. 특히 들꽃향린교회 교우들은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의 고난과 아픔에 함께 해 왔습니다. AI고통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겠지만, ‘고통 그 자체를 함께 겪으며 눈물 흘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인공지능의 발달 그 자체라기 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와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분명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생명사랑교회가 코로나의 위기 상황을 극복했던 상황을 돌아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이 드신 교우들이 젊은이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양보한다는 것, 둘째는 교회가 작으나 건강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사역”,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라는 정확한 목회의 방향을 가지고 있는데, 성숙한 교인들이 이 방향에 충실하면서도 봉사와 헌금 등을 가장 헌신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셋째 목회운영위원회 등 회의체를 통해 결정되었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나서서 책임 있게 일을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손과 발이 빠르다는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즉 머리로만 하거나 입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헌신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동시에 누구 하나 뒤틀어진 마음으로 같은 교인을 비꼬거나 목사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하는 교인이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누구든 환대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인들이 오프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까지 목회와 선교를 할 수 있는 역량들을 갖춰나가기 시작하자 비록 작은 교회였지만 생명사랑교회는 더 단단하고 힘 있고 행복하게 진짜 가족 같은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들꽃향린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AI가 내놓는 답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알고리즘은 효율을 따르지만, 신앙인은 가장 아프고 느린 자를 따릅니다. 둘째, AI를 사용한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는 책임져야 합니다. 그 기술이 정의로운가, 생명을 살리는가, 약한 자를 더 약하게 만들지는 않는가를 언제나 물어야 합니다. 셋째, 사랑으로 모이는 이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예배를 설계한다 해도,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자리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랑으로 모인 우리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대체불가능한 사랑을 더욱 깊이 나눕시다. 사람으로 인해 아파하고 울고 웃는 그 자리에 섭시다. 인공지능에 종속되는 인간지능이 아니라, 사랑에 복종하는 인공지능이 되도록 우리의 자리를 분명하게 만들어 둡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AI는 우리에게 정답을 주려 하겠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AI효율을 계산하겠지만, 우리는 희생을 선택합시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직 사랑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우리들이 오히려 오류처럼 보일지라도 그 거룩한 사랑의 낭비에 투신하는 들꽃향린과 향린의 모든 지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기계에 휘둘리지 말고

더욱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니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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