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6. 11.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 ‘안에’ 그리스도를 계시하셨고, 신자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갈 4:19),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실제로 연합된 채로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연합(Union with Christ, Participation in Christ)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이 질문 역시 답하기 쉽지 않고 길게 설명해야 한다. 여러 답안 중에서 헤이즈(Richard Hays)와 스타워즈(Stanley Stowers)의 글이 가장 흥미롭고 정보가 많으므로 이들의 주장을 소개하겠다. 헤이즈는 ‘그리스도에 참여함’을 네 개의 범주로 설명한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대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둘째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맞서는 군대의 일원이 되는 것, 셋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클레시아)에 참여하고 성례전과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는 것, 넷째는 그리스도의 사역, 죽음, 부활의 서사(내러티브)라는 상징적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스타워즈는 스토아 철학과 고대 의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룬 ‘프뉴마’(pneuma, 영, 숨)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한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고대 의학자들은 프뉴마가 ‘어떤 조밀한 물체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밀도가 낮고 유동적인 물질의 연속체’이고, 그 안에 (신적인) 창족적 힘이 있어 사람의 지성과 도덕성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프뉴마가 사람의 몸을 뚫고 들어와 섞이는 것을 그리스어로 ‘크라시스(χρâσις, mixture)’라고 하는데, 이 크라시스가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잘 설명하는 모델이라고 했다.
소개하고 싶은 견해가 하나 더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바울의 유명한 표현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최근의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어 용법 중에서 전치사 ‘엔(ἐν)’이 사람의 이름과 결합하면 대게 ‘-의 수중에 있다’ 혹은 ‘-의 보호 아래 있다’가 되어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용법이 바울의 표현에도 아주 매끄럽게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론적 배경에서 이해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신비주의적 뉘앙스인 ‘합체’ 혹은 ‘연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능력/권위/보호 아래(in Christ’s hands)’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
김선용 지음, <바울 신학 크로키>(비아토르, 2026. 4. 17. 초판 1쇄 발행), 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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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는 실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바울의 언어가 어떤 상황을,
어떤 믿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에 대한 연구들은
실제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산다고 할 때
우리의 신앙과 신앙에 기반한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학자들이야 여러 다양한 의견 중에 가장 그럴듯한 하나를 고르라고 하겠지만,
신앙을 살아가는 우리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바울도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할 것 같지가 않다.
우리의 ‘앎’이라는 것은 언제나 모호함을 간직하기 때문이고,
다층적이며 겹겹이 포개어져 있기 때문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이런 다양한 의미를 곱씹으며
실로 나는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가를 묻는 것이다.
- 향린 목회 58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