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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건너 갔다 돌아오기

by phobbi posted Jun 08, 2026 Views 6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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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6-08

2026. 06. 08.

 

마음의 동굴, 감추어진 푸스티니아(poustinia*), 가장 깊은 곳의 회랑 등, 이 고요한 중심의 자리를 가리키는 이름은 참으로 많다. 각자 나름대로 떠올리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곳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내시고,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하는 깊은 자리이다. 그곳은 그저 비어 있는 공허한 공간이 아니다. 말씀을 듣는 공간이 되기 위해 비워진 자리이다. 우리는 침묵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대화를 듣고, 그 대화 안에서 우리가 맡은 몫을 감당한다. 오래된 지혜의 말에 따르면, 이는 곧 우리가 스스로 너무 많이 말하지 않으려 애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중심은 우리가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수도자들, 특히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자기 자신을 변두리에 사는 사람, 가장자리에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중심에 가장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 삶에서 중심과 가장자리를 생각하다 보면, 두 자리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 묻게 된다. 어쩌면 가장자리는 또 다른 이름의 중심이 아닐까? 중심이야말로 가장자리를 품어 안고 있는 자리는 아닐까? 아마 중요한 것은 그 둘을 잇는 방식, 곧 오고 가는 올바른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경계가 더 이상 타자를 밀어내는 전선이 아니라, 문턱들이 끊임없이 건너고 다시 건너오는 자리라면 우리는 비로소 새로움에 자신을 열게 된다. 존 던(John Dunne)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쪽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 역량을 발견하거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나는 이제 타자의 세계 속으로 건너갔다가, 새로운 통찰을 가지고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고 느낀다.”

 

* 푸스타니아(poustinia): 기도와 묵상, 단식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고립된 오두막이나 공간으로 러시아 정교회 전통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에스더 드발 지음/이민희 옮김, <경계를 살다>(비아토르, 2026. 4. 7. 초판 1쇄 발행),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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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도 없이 건너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렇게 반복하는 동안 배움이 일어났냐는 것이다.

 

건너갔다가 다시 오기를 반복하면서도

늘 자기에게만 머물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고,

계속 건너가기만 하면서 도무지 자기에게로 돌아올 줄 모르는 이들도 있다.

 

떠나서 타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거기로부터 새로운 통찰을 얻고 돌아와서 몸에 배도록 살다가,

또 떠나 또 다른 타자의 세계로 들어가고,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남이면서,

그렇게 나는 이어지면서 또 새로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58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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