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 촛불기도회 20260604 명동재개발2지구
유산으로 받은 밭
미2:1-3
1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2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3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재앙의 때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외로움의 아스팔트 위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기다리는 형제자매 여러분 위에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랑으로 낮은 자들을 돌보시는 주님께서 오랜 간절함으로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외로움과 의심을 이겨내시고 믿음을 지키시기를 빕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곳, 자본이 가장 집중되고, 국내외 수많은 사람들의 소비와 향락이 분출되는 이곳 명동은, 높은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화려한 조명은 밤을 잊은 채 빛나는 곳입니다. 조명빛이 밝을수록 그 이면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 또한 선명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여기 명동2지구 골목길에 자본의 욕망과 맘몬의 잔인함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땀 흘려 일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상가 세입자들의 눈물과 깊은 한숨이 있습니다.
언젠가 세입자 한 분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며 자식을 키웠습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같은 세입자는 그저 치워야 할 물건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법적 권리라는 권리금과 이사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이곳에서 함께 기도하는 우리는, 세입자 분들의 억울함을 공감하고 함께 연대해 왔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이웃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이고, 사회적 약자의 차별과 멸시는 곧 우리 사회를 좀먹는 것이기 때문이며, 자본의 탐욕이 휘두르는 불의한 횡포는 결국 우리 인류를 패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입자의 억울함과 쫓겨남은,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신앙인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함께 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자산이 늘어나는 축제일지 모르지만, 이곳의 소상공인들에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재앙입니다. 정당하지 않은 그들만의 축제입니다. 골목에서 서민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어 삶을 일구어온 소상공 세입자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재개발은 동서고금의 천부인권을 짓밟는 행위이며 이는 결코 건강한 사회의 면모가 아닙니다.
재개발의 탐욕에 눈이 먼 자본은 법을 왜곡하여 폭력을 행사합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을 자기 입맛대로 활용하여 법정신을 농간하고 사회적 약자를 강탈하여 자기 몸집을 키워왔습니다. 이같은 자본의 탐욕을 우리가 언제까지 용납해야 합니까? 사람을 죽이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결국 인류를 망하게 하는 이 자본의 폭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감시하고 희생량이 된 민중들과 연대하면서, 더불어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성서에서 말하는 구원은 개인적이거나 내세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억압받는 백성을 선택하시고 약속을 맺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억압당하는 현실에서, 고통이 사무치는 민중의 아픔에서 하나님의 구원행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즉 핍박당하는 민중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과 약속한 백성 또한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정의입니다. 이 정의의 정신은 계약법전(출애굽기)과 신명기법전(신명기), 그리고 성결법전(레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예언서의 예언자들의 선포에서 반복되다가,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눅6:20)라는 예수의 선언에 이르게 됩니다.
성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이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조를 수미일관(首尾一貫)으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만나 이야기, 마태복음서의 포도원 주인의 비유와 최후심판의 비유 등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부인권으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권, 성서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일용할 양식”은 성서가 말하는 정의의 모티브이며, 이 정의의 실현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외칩니다. “일용할 양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진 것이며 그것은 축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별히 마태복음서의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서 더욱 급진적인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부터 일한 품꾼과 점심이 지나서 온 품꾼, 그리고 늦은 오후에 와서 일한 품꾼에게 똑같은 임금을 주었다는 비유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노동을 차별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노동의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며 또 누구에게나 하루의 품삯 곧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서가 말하고 있는 사상은, 사람은 누구나 생존의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의 기회가 빼앗겨 생존권이 약탈 되거나, 노동의 업적에 따라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빼앗아 축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업적의 논리, 자본 투자력의 논리, 장밋빛 개발의 논리로 소상공인의 인권, 생존권을 강탈하는 재개발의 논리는 성서의 사상에 반하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세입자들과 함께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의 성서본문 미가서 2장 1절에서 3절 말씀은, 기원전 8세기 유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지배층의 탐욕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미가 예언자가 활동했던 때는 기원전 8세기 후반(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조), 남유다 역사상 가장 격동적이면서도 내부적으로 부패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외교적, 상업적 발전으로 인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던 때입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富)는 소수의 권력층과 대지주들에게만 집중되었습니다.
이들은 농부들의 땅을 저당 잡고 법을 악용하여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사상 즉, 가문에 물려받은 땅은 영구히 팔 수 없고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의 해에 그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희년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남유다의 지배층은 자본과 권력으로 농민들의 생존권인 토지를 영구히 박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취한 부(세금과 고리대금)를 외세인 앗시리아에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강대국의 권력, 곧 맘몬을 섬긴 것입니다. 2절에,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예언자 미가는, 부동산 투기와 토지 독점 현상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남유다, 나라의 근본인 농민을 착취하여 죽게 하고, 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배만 불리면서 외세에 조공을 바치면, 지배층 제 권력은 유지될지라도 결국 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자본의 재개발 탐욕이 극에 달하면 결국 이 나라는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나라의 근본이 되는 농민과 소상공인이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는 나라여야 온전히 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오늘의 미가서의 말씀을 듣고 각성해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밤낮으로 머리를 굴려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사회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그 역사적 재앙을 피해갈 수 없다.” 이와 같은 강력한 사회정의 메시지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명동재개발2지구 소상공 세입자들과 더욱 연대하고 생존권 보장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침묵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