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by phobbi posted Jun 04, 2026 Views 7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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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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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04.

 

만득이가 아프리카의 한 소국을 방문한다고 가정하자(아프리카의 소국을 예로 들어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만득이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로서 세계 최강국인 조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한 소국에 도착하고 보니 공항의 건물이 모두 한옥 양식이다. 만득이는 약간 의아스럽다. 이 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 민족이라는데 왜 자신들의 고유한 건축 양식을 포기했을까? 그는 의구심을 가진 채 호텔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탄다. 택시 기사는 한국어를 구사하려 애쓴다. 만득이는 한편으로는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이므로 기사가 한국어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사가 한국어를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에 다시금 의구심이 생긴다. 여기는 기사의 나라가 아닌가?

 

기사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는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가 신나게 흘러나온다. 기사는 짧은 한국어로 설운도가 이 나라에서 최고의 인기 가수라고 말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이 나라를 방문하여 유력한 후보를 만나기까지 했다고 한다. 만득이는 눈길을 차창 밖으로 돌린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복을 읽고 있다. 디자인도 한국의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한정식이란 간판을 단 고급 식당이 눈에 띈다. 만득이는 여기가 과연 아프리카의 한 구석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택시가 모퉁이를 돌자, 대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한국놈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휩쓸 태세이다. 그들은 주체적 국가와 주권 사수를 맹렬히 외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 한복을 입고 있다. 택시 기사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막걸리와 한국산 소주를 가장 좋아하며, 한국 가수인 조용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한국 사람이라면 단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나라에서 취직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만득이가 보기에 이 나라는 의식주 모두가 거의 한국화되었고, 음악미술영화 등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득이는 과연 이 나라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의심을 갖는다.

 

탁석산 지음, <한국의 정체성>(책세상, 2001. 8. 5. 초판 1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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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전에 출판된 책이다.

<한국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일까?

정말 어려운 주제다.

 

이 책에서는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을 제안한다.

이 세 가지를 어느 정도 만족한다면 무엇이든 우리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이 책에서는 그동안 한국적인 것을 찾는다는 이유로 너무 시원성을 따진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서 <서편제>보다는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예를 든다. 이 말에 동의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전통의 단절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거나, 배우거나 할 기회를 누리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위의 만득이 예처럼 우리는 너무나 빠르게 서구적 양식에 익숙해지면서, 과거를 몽땅 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20년이 지나도 학계의 서구 추종과 외국 박사학위에 대한 선망은 여전한 듯 하고,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 문제를 푸는 것에서도 뭔가 어색한 상황들이 벌어지는데, 정체성까지 논의하지는 않더라도, 저자가 말한 대로 현재성과 대중성과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남의 다리를 긁고 있는 느낌이다.

 

- 향린 목회 57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