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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읽기와 집중하기

by phobbi posted Jun 01, 2026 Views 9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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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6-01

2026. 06. 01.

 

4세기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Sanctus Ambrosius)인간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라면 지구의 위치나 성분 따위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바 있지만, 박문호 박사(자연과학 세상)지구가 무엇인지를 아는 데에 인생의 전부를 걸었다면서, “교황의 기도나 지혜가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아줄 수 있는 게 아니며 오직 지식만이 인간을 곤경에서 구한다고 말한다. 이 난감한 사정은 지금에도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자의 합리적 배열에 얹힌 갖은 이치들을 파악하는 공부와 명상과 정화(淨化)와 수기(修己) 사이의 거리를 여태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적 집중하기 속에서 그 진정성을 기대하는 명상과 기도, 그리고 공적 소통 가능성 속에서 그 합리적 이치를 확인하는 책읽기 사이의 오랜 소외와 불통을 극복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문자의 합리성에 코를 박고 있는 이들은 그 각박한 가설과 이론 속으로만 인간 경험의 전부를 환원하려고 하고, 인식의 노동에 게으르고 손쉬운 비전(祕傳)에 쏠리는 이들은 사적 에고의 현란한 날개짓에 얹혀 덩달아 부화뇌동하곤 한다. 그러나 인류가 계발하고 실천하며 전수해온 공부의 형식이 결국 이 두 가지 상이한 길로 분기해 오고 있다면, 그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간의 불신과 불통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길 위의 보행이 우리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김영민 지음,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늘봄, 2022. 09. 10.),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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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믿음, 사실과 의미, 과학과 종교, 머리와 몸, 이해와 상상력, 객관과 주관, 설명과 고백!

 

이 두 가지 모두를 녹여내는 자리는 삶이다.

삶에서는 둘 다가 필요하다.

그리고 둘은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삶 안에서 이 둘을 부단히 연마해야 한다.

어느 하나도 소홀해선 안된다.

머리로 사실을 이해하여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과학도,

체험 속에서 의미를 잡아내 주관적으로 고백하는 종교도,

모두 인간의 삶에서 참으로 소중하다.

서로 싸울 일 없고, 서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 향린 목회 57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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