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30.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마태복음서 6장 28-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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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격언 중에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어도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도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過猶不及)”는 말이 있다. 자기의 자리를 잘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들에 피는 백합화와 솔로몬의 영화를 비교하신다. 그냥 백합이 아니라 “들의 백합”이고, 그냥 솔로몬이 아니라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이다. 각자 자기 자리를 그렇게 잡은 것이다. 백합은 꽃 자체로 아릅답지만 더 그윽한 아름다움은 들이라고 하는 장엄한 배경이 있을 때 가능하다. 강한 햇빛, 상쾌한 공기, 드넓은 하늘, 넓게 펼쳐진 저 들판이 합하여 백합 한 송이를 피어내고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마찬가지로 인격의 아름다움 또한 그가 처한 자연과 사회, 역사와 문화적 상황에서만 하다. 제 한 몸 소유하여 목숨부지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커다란 사회의 자리에, 긴 역사의 밑자락에 자기를 놓아야 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었다 하더라도 제 한 몸 좋게 하려는 솔로몬보다 저 들의 백합이 훨씬 아름다운 이유다,
믿음의 자리는 우주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시야에 동참하는 것이며,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가 품으셨던 하나님 나라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제 자리를 자기의 욕망에서만 찾고, 신앙마저도 욕망에 물들어서 오늘날 교인들이 소금과 빛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를 살지만 그 하루가 언제나 영원의 그 한 점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적정한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 살펴야 한다.
- 향린 목회 57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