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29.
어느 날, 숙종 임금이 연포탕(軟泡湯)을 먹다가 체해서 가슴이 막혀 계속 토하면서 아래로는 오줌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파발을 띄워 급히 유상을 불러 진맥하라 명했다. 유상은 밤새 달려와 돈의문에 도착했지만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한양은 임금이 계신 곳이라 통행금지를 실시했는데 날이 밝지 않으면 절대 문을 열 수 없었다. 유상은 문 안에 있는 관리에게 연락해 왕명으로 왔음을 말하며, 병조(兵曹)에게 보고해서 문을 열게 했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며 관리들이 왕래하는 동안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할 수 없이 유상은 근처 한 초가에 등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가서 잠시 쉬었다. 그 집안의 한 노파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아까 쌀뜨물은 어디에 두었느냐? 두부 위에 떨어질까 걱정이로구나”
유상이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겨 노파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노파가 대답했다. “쌀뜨물이 두부에 떨어지면 바로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문지기가 나와 유상을 찾아서 모시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유상이 대궐로 가서 증상을 물어보니 숙종은 연포탕에 든 두부를 먹다가 체한 것이었다. 즉시 내의원에 부탁해 쌀뜨물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고는 그걸 조금 데워서 임금께 드렸다. 그러자 체한 기운이 싹 내려갔다.
유광수, 「천연두 명의(名醫)가 된 유상(柳瑺)의 한 뼘」, 『기독교사상 2026. 06. 통권 810호』(대한기독교서회, 2026. 06. 0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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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시기 어의였던 유상(柳瑺, 1643-1723)은 1683년 숙종의 천연두(두창)를 완치시켜 종2품 '동지중추부사' 벼슬과 명성을 얻은 명의이다. 1699년에는 세자의 천연두까지 완치해서 지중추부사, 합천군수, 삭령군수 등도 역임했다. 조선 시대 가장 무서웠던 병인 천연두를 고치고 물리쳤기에 유상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나오는데, 위의 이야기는 『청구야담(靑邱野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천하의 명의도 미천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뱅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을 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명의로서 소문이 났어도 젠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친근했던 유상의 겸손함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명의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달인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하게 꾸준히 배우고 노력하는 이들만이 이르게 되는 경지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늘 아쉬워한다.
- 향린목회 57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