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28.
현장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모욕적인 표현을 수집하던 중 두가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 다 되었네요”
“희망을 가지세요”
전자는 이주민을 향한, 후자는 장애인을 향한 모욕적인 표현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었다. 당혹스러웠다. 이 두가지 표현은 얼핏 칭찬이나 격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칭찬과 격려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말을 한 당사자에게 이런 표현이 듣는 사람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한다면 더이상 문제가 아닌 걸까? 모욕을 한 사람은 없고 모욕을 당한 사람만 있으니, 모욕을 당한 쪽에서 감내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단순히 몇몇 말들을 하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왜 이런 말이 모욕이 되는지 이해하지 않으면 표현만 다른 비슷한 말을 하거나, 말이 아니라도 시선과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말이 왜 모욕이 되는지 알아내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이주민들은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에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 했다. 또다른 이유도 있는데, 굳이 한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한국인이 된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였다.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거나, 한국인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어느 쪽이든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장애인에게 하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 역시 전제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을 가지라는 건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했다. 설령 장애인이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장애인이 희망을 가져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김지혜 지음,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25. 9. 11. 초판 82쇄 발행),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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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처럼 우리는 누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위의 사례처럼 심지어 칭찬이나 격려라 생각했어도,
결과적으로 차별이 되는 경우,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적잖게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로 그럴 때,
진정한 의미의 배움이 일어난다.
사람과 사물,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은 저자의 말대로
무의식까지도 샅샅이 훑어보면서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위와 같은 상황들을 맞닥뜨리면 그때는 마치 흠 하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곤 하는데,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실수하는 존재라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배움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또 노력해야 한다.
오늘도 조심히, 그리고 조신하게!
- 향린목회 57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