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사상과 종교의 출처

by phobbi posted May 25, 2026 Views 79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6-05-25

2026. 05. 25.

 

일찍이 시라카와 시즈카는 공자를 평하며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사기>등에 나오는 공자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허구다. 공자는 아마도 이름 없는 무당의 아들로서 일찍 고아가 되어 미천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처음으로 깊이 응시한 이 위대한 철인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사상은 부귀한 신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상은 부귀한 신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라카와 시즈카가 실존을 걸고 쓴 한 줄이다. ‘부귀한 신분이란 이 세상의 구조에 영리하게 적응하며 권력이나 재화나 위신이나 인망을 취하고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계 속에서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는 재능을 말한다. ‘부귀한 사람은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 근원적인 고찰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건강한 인간이 자신의 순환기계나 내분비계의 구조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법도 없다. (그들 자신이 이미 성공한 사람인데 자기 수양의 롤모델을 찾을 필요가 어디 있겠나.) 부귀한 사람은 근원을 탐구하는 법이 없다. 방법도 모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사상은 그런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시라카와 시즈카는 말한 것이다.

 

똑같은 말을 스즈키 다이세쓰도 한 바 있다. 그는 헤이안 시대에는 종교가 없었는데 가마쿠라 시대에에 사람이 대지의 영에 닿았을 때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설의 기초공사를 하면서 <일본적 영성>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현실에서 향락주의가 긍정되는 세계에는 종교가 없다. 만요시대는 아직 유치한 원시성인 시대였기에 종교가 자라지 못했다. 헤이안 시대에 들어와서는 일본인도 몇 가지 생각을 해도 좋았겠지만, 수도의 문화교육자는 너무 현세적이었다.

바깥으로부터의 자극이 없었으므로 반성의 기회는 없었다. 종교는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는 태어나지 않는다.”

 

시라카와 시즈카가 사상이라고 부른 것과 스즈키 다이세쓰가 종교라 부른 것은, 명칭은 달라도 내용은 다르지 않다. 둘 다 세계의 양태를 근원적으로 포착하여 인류에게 삶의 방향을 안내하고, 나아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가는 힘을 부활시키려는 말을 하고 있다. 사상이든 종교든 혹은 학술이든 예술이든,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부귀한 신분이나 향락주의현세 이익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두 노스승은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목표는 천하무적: 심신단련으로 깨우친 인생의 기본기 수업>(도서출판 유유, 2025. 6. 4. 초판1쇄 발행), 145-148.

 

====================================

 

인생의 시련을 사상과 종교의 성찰로 이어가는 계기로 삼는 이는 복이 있다.

세상은 분쟁과 아픔, 상처와 갈등으로 언제나 시끄러운 곳이다.

그러한 카오스적 상황을 자기 배움과 성숙의 장으로 여기는 이가 지혜로운 이다.

 

오늘도 지혜롭게 살아보자.

 

- 향린목회 568일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