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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호감을 넘어 신뢰로

by phobbi posted May 19, 2026 Views 5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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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5-19

2026. 05. 19.

 

신뢰

 

사적(私的) 정서가 타자성의 아득한 지평에 다가서려는 노력 없이, 사적 규칙 속에서 저 홀로 작동하여 낭만적·심리적으로 타자와의 사이비 일치를 전제하도록 만드는 (현명하지 못한) 호감과 호의는 필연적으로 오해와 상처를 낳는 동시에 신뢰라는 사회성의 건축에 치명적인 결함을 노정한다. 신뢰가 아닌 정서에 따라 움직이는 호의·호감은 마음만을 키우거나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며 권력의지의 일종일 따름이기에, 호감·호의(만으로)는 관계를 구원하지 못하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인 동무들의 신뢰로 가는 길의 첫걸음은 사이비 감정이입의 안이한 나르시시즘으로서의 호감·호의로부터 벗어나는 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호감과 호의에 관습적으로 얹힌 도덕주의적, 종교적, 관념적, 그리고 나르시스적 선입견을 걷어내고 찬찬히 그 실제의 기동과 작동 방식에 주목하다보면, 호감과 호의는 신뢰의 책임과 사회적 관계에 이르지 못한 비() 관계의 관계로서,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게 마련인 것이다. 호감과 호의가 에너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러한 서늘한 시각을 인간관계에서 체질화(‘호감과 호의를 알면서 모른 체하기’)시키는 동시에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 그 에너지의 배치와 활용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순간부터, 호감과 호의는 값이 아닌 가치를 비로소 얻게 되고, 사회적 신뢰와 책임의 관계의 동력으로서 새로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 자폐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호감의 풍선을 찢고, 맹점만을 보여주는 호의의 거울을 깨뜨리며, 시행착오와 상처를 딛고서 타자성의 아득한 지평으로 나아오려는 몸부림으로부터 발생하는 신뢰는, 사적 의도로는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객관성의 가치이자, 기분이나 심리주의적 직관과 같은 갖은 기대를 접어둘 수 있는 능력 혹은 실천적인 지혜이며, 마음을 유추/짐작할 수 있음에도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근기와 슬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뢰는, 나의 현재와 너의 미래라는 실존과 실존 사이의 심연 속에서 무한을 체감하며 그 무한을 공대하는 일로서, 새로운 버릇을 통해 그 심연을 근기 있게 가로지르고자 하는 동무관계의 시금석인 것이며, 체계 너머의 세상을 치열하고 진득하게 사유하여 동일시의 거짓이나 자기차이화 착각을 넘어설 수 있는 비평이 가능해지는 사회성을 뚫어가는 방식이다.

 

김영민 지음, <영화인문학>(글항아리, 2009. 09. 02. 12), 33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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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 맺는 일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가 말한 인()에 대해서도 충()보다는 서()에 더 주목해야 한다.

호감과 호의는 다분히 나르시시즘의 발로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을 딛고 넘어서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홀로 머무를 줄 알고, 좋으면서도 거리를 둘 줄 아는 것에서부터,

사적 의도와 규칙을 부단히 넘어서려는 지속적 훈련을 해야 한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 대체로 제 눈에 씐 콩깍지이고,

콩깍지가 벗겨진 후부터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듯,

사적 감정의 울결 속에서만 움직이는 관계는 실로 관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좋으면서도 무심하게 지내는 것이다.

정 없다는 소리를 듣기야 하겠지만.

 

- 향린 목회 56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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