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17.
서구가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사회적 교양이 뿌리깊게 생성되는 길이 과거의 전통에 대한 법고창신, 혹은 창신능전(創新能典)의 창의적 계승과 이월(移越)에 있다면, 우리처럼 과거를 완전히 청산한 망각의 터 위에 ‘변변치 못한’ 자본의 건물을 천정부지로 세운 곳에 교양의 숲이 들어설 리 있겠는가. 설혹 정당 정치의 민주화가 더 진전되면서 사민주의적·복지사회적 장치들로 보완되고, 역사적 전과(前過)에 대한 공론적 합의가 더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며, 우리 모두의 숙원인 남북관계의 평화적 공존과 번영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은 문제는, 일상의 낮은 자리에서 매시간 매번 살아내면서 드러내야만 하는 삶의 질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자기 긍정이다. ‘혁명을 한다면서 방만 바꾼’ 게 아니라 각자의 삶이 들어앉은 방을 분명히 바꾸는 일이다. 이로써 내면의 깊이와 풍성함으로 인해 자생하는 자기 긍정의 삶을 두루 나눌 수 있는 일상의 관계들을 바로 자기 자신의 공부길(爲己之學)에서부터 조금씩 넓히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팔리지 않는, 강요되지 않는, 떼 지어 몰려다니지 않는 정신의 힘에 의한 작은 연대들 속에서 누림과 나눔의 새 가능성을 읽어내고 실천하는 일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처럼, 보편성을 지향하는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가장 기술적이며 전문적인 행위의 핵심에까지 미치는 도덕적 판단의 끈을 놓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실천에 따른 시대적 부하(負荷), 그 파생상품인 천민 자본주의적 무교양에 대해서 “국가가 실패한 자리에 학인 개인이 다르게 개입한다”는 가능성을 구체화시키면서 시민으로서의 학인, 혹은 학인으로서의 시민(學民)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되는’ 일이다.
김영민 지음, <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글항아리, 2025. 11. 17. 초판발행),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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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종 교인들에게 “신앙 있는 교양인, 교양 있는 신앙인”이 되자고 말해왔는데,
저자는 “시민으로서의 학인, 혹은 학인으로서의 시민”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말한다.
인공지능이 처음 등장한 시점부터 대략 3여년 동안 그것들을 사용해 보면서
요즘 새삼 깨닫는 것은 역시 공부의 중요성이다.
경험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에 대해 더 치밀할 필요가 있고,
그렇다면 더더욱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내가 자라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미처 모르던 것조차 알 수 있는 길들이 열리는 이때처럼,
공부하기 좋은 때가 어디 있겠나 싶다.
내면의 깊이와 풍성함을 넓히는 일,
일상의 관계들에서 누림과 나눔의 새 가능성을 열어가는 일에 더 힘써야 하겠다.
- 향린 목회 56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