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15.
이전까지 소비사회에서 지식인들은 주로 TV나 라디오, 길거리 간판, 식품 포장지 등의 광고를 심각하게 경계했다. 이러한 광고들이 연예인 등 아름다운 모델을 앞세워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는 부화뇌동하여 소비에 빠져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벗어나려면 각종 미디어 속 대중의 유행에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기만의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건 ‘자기만의 취향’이라고 믿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AI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우리가 가장 좋아할 만한 것들만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자 들뢰즈의 말을 빌리면, 우리 욕망이 AI에 의해 설계당해 ‘포획’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욕망은 본디 자유롭게 흐르며 창조적인 생산을 이루는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조작하여 만들어낸 길만을 따라가도록 유도되면서,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영토’ 안에 우리 욕망이 갇히는 것이다. 그것은 개개인에게 너무나 개별적이고 맞춤화되어, 애초에 ‘대중의 소비 성향’이나 ‘거대한 유행’은 거론하기 어색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 시대에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것이 ‘나의 취향’일 수도 있다. AI의 설계를 따라 끊임없이 제공되는 릴스나 쇼츠 같은 영상들, 내 취향에 딱 맞아서 나의 편향을 무한이 강화하는 SNS 속 의견들, 나의 소비 습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많이 소비하게 하려고 추천되는 상품들이야말로 내가 벗어나야 하는 ‘적’일 수 있는 것이다. AI의 알고리즘에 맞서 나를 지키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과 싸워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AI가 나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길들이는’ 시대일수록, 내 삶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반성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연습을 수시로 해야 한다. 잠시 스마트폰을 덮고 내가 지난 10분 동안 뭘 하고 뭘 봤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한 시간 동안 본 것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10분 동안, 한 시간 동안, 아니, 어제, 일주일 전, 한 달 전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이런 ‘깨어남’의 순간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AI 알고리즘은 나를 ‘잠재우는’ 기술이다. 자연스러운 도파민 자극을 쫓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초적인 자극으로 길들여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다. ‘깨어난다’는 것은 이처럼 AI가 잠재우는 나로부터 깨어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우리 시대에는 ‘반성적 자아’가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반성적 자아란, 말 그대로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듯 성찰할 수 있는 자아를 뜻한다. 우리는 세상의 너무 많은 것을 정신없이 쫓느라 가만히 멈춰서 나를 반성할, 즉 거울을 놓고 바라볼 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화장실 갈 때도,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잠들기 바로 직전까지도, 눈이 벌게지고 목디스크가 걸릴 때까지 AI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다.
정지우 지음, <AI, 글쓰기, 저작권>(마름모, 2026. 5. 18. 개정판 1쇄), 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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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세계와 신념 세계에 덧붙여 가상 세계가 실재 세계만큼이나 현실적이다.
가상 세계가 현실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래되었는데,
인류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있다.
기계의 발달 속도를 인간의 제도, 가치관, 생활 방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Cultural Lag)이 우리 삶 곳곳에서 일어난다.
디지털 환경은 우리 뇌로 하여금 보상 체계를 재배치하고,
우리 생각을 짧게 만들고, 시간의 지속을 막아 전부 파편화시킨다.
집중과 주의력, 기다림은 이제 귀한 보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게 쏟아지는 정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피곤에 찌들어 산다.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익힐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반복적으로 겪다가
결국은 소진과 냉소, 무능감에 쌓여서 결국 자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나라고 생각한 것마저도 AI 알고리즘의 결과라면 정말로
지금의 문명을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문명의 발전이 사람을 정말로 성숙시키고 있는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향린 목회 55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