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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기도회

수요평화 "의인을 향하여 머문 시선" | 이원혁 | 2026-02-04

by 이원혁 posted May 08, 2026 Views 4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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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2-04

제목: 의인을 향하여 머문 시선

본문: 창세기 18:20-33

 

오늘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습니다. 제가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 잠시 이 세종 호텔을 다녀갔었는데, 그때 로비 안에 들어갔을 때 참 알 수 없는 훈훈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감격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한 50여 분 정도가 로비에 모여 계셨는데, 제가 마주한 동지들의 얼굴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평화롭고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것을 보며 저는 ‘연대하는 힘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며 가슴이 뜨거워졌었습니다.

 

그런데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너무나 가슴 아픈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고진수 지부장님이 연행된 이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 현실을 어떻게 보실까? 우리가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 계속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함께 보면서 그 뜻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의인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먼저 본문에 대한 오해를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책을 보면 이 단락의 제목이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빌다”라고 써 있는데, 이 제목이 과연 맞는 것일까요? 저는 이 제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하여 기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이해가 안 가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23절)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소돔 땅에 의인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그 땅이 악하면 거기 사는 의인들까지 쓸어버린다는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락의 제목은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서 빌다’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의인을 위해서 빌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독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바로 아브라함의 질문이자 기도의 핵심인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의인을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행동은 하셔서는 안 된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여섯 차례에 걸쳐서 숫자를 줄여가며 점차 얻게 된 확신은 이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결단코 의인과 악인을 한꺼번에 멸하시는 분이 아니시구나!” 이것을 확인한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뭘 달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분의 공의와 정의를 바르게 깨닫는다면, 우리 안에 두려움이나 낙심은 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 앞에 저항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기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답답하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래도 하나님 뜻, 저래도 하나님 뜻이라는 것이죠. 이 땅을 이끌어가는 리더 대통령을 선출할 때도 ‘이 사람은 하나님이 뽑았으니까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믿음’이었습니다. 이게 과연 믿음입니까? 믿음이 좋으면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도, 참사가 일어나도 그게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앞에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저항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20-21절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이때 아브라함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주님은 이 세상의 주관자요 통치자이시니 전부 주님의 뜻대로 하심이 마땅하옵나이다” 이런 식으로 보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행동이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 앞에 부당한 현실 앞에서, “주시는 이도 여호와시고 취하시는 이도 여호와시니 다 주님 뜻대로 될 것입니다”라고 가만히 있다면, 그것이 과연 온전한 믿음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습니까?” 라는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3. 의인 10명에게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의인 10명을 봐서 나머지 소돔 땅의 불의한 무리들을 용서하겠다는 뜻이 될까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럼 그 10명 때문에 의롭지 않은 소돔 사람들이 멸망당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것 아닐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한꺼번에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었던 롯과 그의 가족은 천사들이 구출해 내어 멸망을 면했지만, 결국 소돔 땅의 악한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선악간에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과연 이 땅에 의인 10명이 있다고 해서 악인들에게 “면죄부”를 주시는게 타당하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기서 저만의 상상과 해석을 넣어보고 싶습니다. 혹시 하나님은, 그 의인 10명이 소돔 땅을 의로운 땅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하셨기 때문에, 그 소수의 인원만 가지고도 그 땅을 의로운 땅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심판을 유예하시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당시 소돔 땅은 적게는 600명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많게는 2500명 정도 사는 큰 성읍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인원에 비해 10명은 정말 작은 숫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류를 이끌어오신 역사는 늘 소수를 통해 다수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300용사만을 사용하셔서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셨습니다(삿 7장). 하나님은 자신만 홀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낙심한 엘리야에게 내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왕상 19:18).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실 때 로마 제국과 로마의 군대를 대항하기 위해 그 당시 너무나도 미미한 숫자 12명을 제자로 부르시고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최초에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는 고작 120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행 1:15).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소수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하루도 안 된 사이에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한 동지는 192명, 온라인 탄원서는 8797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잠시 여러분의 주변을 살펴 보십시오. 우리는 10명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우리가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충분히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실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우리의 마음을 낙심되게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종호텔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줄 수 있겠냐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라고, 차라리 더 좋은 직장을 줄테니, 더 많은 돈을 줄테니 그냥 포기하라고 종용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직장의 문제도, 돈의 문제도 아닌 정의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선악간에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셔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의 편에 서 있고, 하나님 역시 우리 편에 서 계시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마무리

 

마지막으로 제가 어렸을 때 아주 인상깊게 봤던 영화의 명대사 한 줄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2007년에 에반 올마이티라는 영화에서, 하나님의 역할로 나오는 모건 프리먼이 주인공 스티브 카렐의 가족들이 관계로 인해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람인 척 하고 나타나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만약 가족이 좀 더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묘한 감정이 생기게 하실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마찬가지로 이 대사를 오늘의 우리에게 적용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정의로운 세상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하루 아침에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꿔주실까요? 아니면 우리에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는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9)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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