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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고치의 시간

by phobbi posted May 06, 2026 Views 6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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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5-06

2026. 05. 06.

 

앞서 말했듯이, 은둔은 후퇴나 퇴행이 아니다. 도리어 고치 안에서 기존의 자기를 해체하고 새로운 존재로 재구성되는 변태(metamorphosis)의 과정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치 안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기 전, 완전히 녹아내려 곤죽과 같은 상태가 된다. 기존의 형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해체되는 것이다. 그 곤죽으로부터 나비의 몸이 새롭게 구성된다.

 

청년들의 은둔도 그와 같은 시간을 통과한다. 기능이 전면 정지되고, 목욕조차 어려우며, 하루가 방 안에서 끝나는 시간이다. 사회는 이것을 낭비, 도태, 비정상으로 부른다. 그러나 신학은 다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륀(A. Grün)은 그의 저서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 하나님이 성공의 정상이 아닌, 무너지고 해체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엘리야가 동굴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은 강풍도, 지진도, 불도 아닌 세미한 소리 가운데 찾아오셨다.(왕상 19:12) 은둔의 시간은 바로 이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외적인 요란함이 모두 멈춘 자리에서 존재의 윤곽을 처음으로 감각하는 곤죽 같은 시간은 저주가 아니라, 거짓 자기가 해체되고 참 자기가 잉태되는 거룩한 성화의 과정일 수 있다.

 

물론 모든 고치가 변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고치는 그대로 말라 죽기도 한다. 은둔이 언제나 성화로 이어진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치 안의 시간을 단순히 실패와 낭비로 규정하는 시선이 얼마나 성급하고 폭력적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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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신학자에게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은둔 청년들과 가족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오랫동안 주입되어온 사회의 서사가 뿌리박혀 있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쓸모 없다’,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이 서서는 은둔 청년을 방 한 칸이 아닌 훨씬 더 깊은 곳으로 옭아맨다. 강단에서, 심방 자리에서, 소그룹 모임에서 목회자는 이 서사와 정면으로 맞서는 다른 이야기를 선포해야 한다. ‘기능하지 않아도 존엄하다.’, ‘생산하지 않아도 가치 있다.’ ‘느린 리듬도 하나님 앞에 의미 있다.’ 목회자의 언어는 세상의 의미를 전복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전달해야 한다. 마치 예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김아영, 방 한 칸의 광야: 청년들의 은둔과 동행하기, 기독교사상 2026. 05. 통권 809(대한기독교서회, 2026. 05. 01.), 18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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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과거를 비난하지 말고, 미래를 강요하지도 말고,

지금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의 시간을 직면하고 그것을 넘기 위해 가장 몸부림치는 것은 본인이다.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는

기다려 주고,

끝까지 믿어 주고,

머물러 따뜻한 눈길로 격려하자.

 

아마도 바뀌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일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이 세상의 논리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느리더라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다.

 

- 향린 목회 54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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