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 04.
교회에는 예수 이미지가 넘쳐 납니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대부분이 앵글로색슨 계통의 백인 미남 청년으로 묘사됩니다. 백인들에 의해 예수가 독점되고 전파됐기 때문입니다. 상품화된 예수의 이미지에는 고대 근동의 시골 노동자 출신 젊은이의 실제가 없습니다. 우리의 뇌리에 박힌 예수의 모습은 실제의 예수가 아닙니다.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통해 온 종교 상품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예수,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하나님의 아들 예수,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예수, 이런 예수는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난과 노동에 찌들어 피부가 시커멓게 타고 얼굴 주름이 깊은 예수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과 정치적 억압에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던 예수가 아닙니다. 타락한 종교인들의 밥상을 뒤집어엎던 예수가 아닙니다. 정의도, 거룩한 분노도, 가난한 자들에 대한 가슴 저린 연민과 사랑도 다 거세된, 유순하기 그지없는, 순한 양 예수입니다. 마그리트식으로 말하면, 이것은 예수가 아닙니다.
김선주 지음, <대신 울어주는 여자>(도서출판 등과 빛, 2025. 11. 01.), 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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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자기가 그리는 예수 이미지, 하나님 이미지가 있다.
그것이 자기의 삶을 주조한다.
공관복음서에 보면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자, 예수가 또 묻는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당시 베드로는 예수의 질문에 “그리스도”라고 답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베드로를 따라 “구원자”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구원자’이자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전에 기억해야 하는 것은
위의 저자가 말하듯
예수는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난과 노동에 찌들어
피부가 시커멓게 타고 얼굴 주름이 깊은 목수였다는 것이다.
- 향린 목회 54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