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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용되는 죄인의 자기 긍정

by phobbi posted May 03, 2026 Views 6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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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5-03

2026. 05. 03.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자기 사랑을 낳는다. 흔히 말하는 사랑은 남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고, 자기 사랑은 이기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문주의자 칸트는 자기 사랑을 순수한 도덕성을 해치는 것으로 보았고, 유교가 악의 근원으로 말하는 사심도 말하자면 자기 사랑을 가리킨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사랑(amor sui)이란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개인의 자기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때의 자기 사랑은 부도덕한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수용을 통한 새로운 자기 이해의 탄생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사람은 세상과 붙어 있던 자신을 떨어뜨려 놓고 보게 되고, 그 거리가 만든 새로운 자기의식의 공간에서 부족한 자신을 수용한다. 그것은 세상이 준 정체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자기 존중, 그리고 자기 존중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자기 이해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신앙적 근거를 지닌 자기 존중은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무로부터의 자기 긍정이다. 그래서 무한성을 가지며 외부 사태에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생기는 자기 존중과 자기 긍정은 자기가 되는 자유의 탄생을 의미한다. 동서양의 인문주의는 사람됨을 중시했지만, 기독교는 자기 됨을 중시한다. 기독교는 된 사람이나 덜 된 사람같은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사람됨보다 먼저 자기 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 됨됨이의 평가는 남에게 지켜야 할 도리인 윤리와 도덕에 근거한다. 그러나 자기 됨은 개인이 도덕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죄인도 자기 존엄성을 가지고 내면으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생기는 새로운 죄의식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용되는 죄인의 자기 긍정 곧 자기가 되는 자유와 함께 발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발생하는 자기가 되는 자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존엄성(dignitas)을 보았고, 루터는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의 자유라고 말했다.

 

양명수, 유교의 인()과 기독교의 사랑, 기독교사상 2026. 05. 통권 809(대한기독교서회, 2026. 05. 01.), 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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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와 기독교의 신본주의(神本主義, Theocentrism)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

 

흔히 인문주의를 인본주의로 말하면서 신본주의와 서로 맞서야 하는 것인 양 다루곤 했다.

그러나 이 둘을 그렇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대화하면서 각각의 고유성과 독특성 속에서 상호 배움과 성숙의 가능성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는 더 깊은 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자유와 자기 존중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를 두고 유교와 기독교는 서로 다르다.

유교는 모든 사람 안에 이미 하늘의 뜻이 내재해 있다고 보고,

그것을 갈고 닦는 것에서

힘쓰지 않아도 딱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는(不勉而中, 不思而得)’

농익은 자유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용되는 믿음의 체험 속에서

자기 사랑과 자유, 자기 존중의 근거를 확보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자기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수행과 윤리의 길을 연 유교는 물론이거니와

기독교의 사람됨 또한 하나님 앞에서 수용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알려면,

자기의 한계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회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한성으로부터 고통이 발생한다는 근본적 성찰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서기 어렵다.

주체를 자기 자유와 자기 존중의 근거로 삼은 현대인이 무너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니체는 초인(Übermensch)이 되라고 말했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은 초인이 되기는커녕 자본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인간 됨과 자기의 자기 됨에 대해서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향린 목회 54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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