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28.
사람이 0.5초 늦게 도착하는 의식의 지연 중계를 통해 글을 쓴다면, AI의 글쓰기는 지연 없는 실시간 출력에 가깝다. 가령 거대언어모델은 전방 전달(feed-forward) 방식을 따른다. 기계는 확률 분포에 따라 다음 단어를 예측하며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고, 이 과정에 ‘수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지적을 받아 내용을 고치더라도, 이 경우는 새로운 확률값에 따른 또 다른 전방 생성일 뿐이다. 기계는 자신이 쓴 글을 되돌아보며 고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간의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재귀적(再歸的)이다. 김성우가 지적했듯, 글을 쓰는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쓴 문장으로 되돌아간다.(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23, 136.) 앞 문장과 뒤 문장의 논리를 맞추기 위해, 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또는 자기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썼던 것을 지우고 다시 쓴다. 이 되돌아감의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반복운동 속에서 글을 쓰는 인간의 생각은 처음보다 더 정교해지고 단련된다.
글쓰기는 텍스트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공정이 아니라, 쓰는 주체가 변화하는 ‘되기(becoming)’의 과정이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과정을 단축하거나 생략한다. AI는 사유가 무르익을 수 있는 시차(時差)를 삭제한다. 과정 없이 주어지는 결과물은 인간을 성장시키기는커녕, 단기적인 성과에만 반응하는 동물로 전락시킨다. 결과물은 손에 넣었지만, 사유하는 주체의 영혼은 잃어버린 것이다.
AI 생태계는 전통적인 리터러시의 위계를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글쓰기가 곧 생각을 제작하는 공정이라는 사실이다. 빌렘 플루서는 글쓰기를 도구를 사용해 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침투의 몸짓’으로 정의했다. 직접 쓰지 않는 자는 표면 위를 미끄러질 뿐, 사유의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문장을 조립하는 지적 역량은 펜 끝으로 대상을 찢고 들어가는 구체적인 마찰을 견딜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비효율이다. 의도적으로 기계적 속도를 거스르는 비효율적인 읽기와 쓰기를 수행해야 한다. 우선 깊은 읽기를 복원해야 한다. 정보를 빠르게 스캔하는 방식이 아니라, 텍스트의 질감과 문장의 리듬을 곱씹으며 읽는 행위다. 난해한 텍스트 앞에서 멈춰 서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는 지루한 시간이야말로 뇌가 기계적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신경 회로를 구축할 기회가 된다.
덧붙여 이런 실천이 왜 어려운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우리의 남은 삶이 막대한 금융 부채를 짊어지고 그것을 갚아가는 시간으로 빼곡히 채워질 수밖에 없다면, 깊은 읽기의 비효율에 할애할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비효율이라는 이 싸움법은 부채 인간의 비참에서 헤어날 수 없는 어른보다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마찰이 있는 쓰기를 감행할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 자동 완성 기능을 끄고, 복사 붙여넣기를 멈추고, 백지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와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응원해야 마땅하다. 생각이 막힐 때 AI의 도움을 청하는 대신 그 막막함을 꿀꺽 견뎌야 한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튀어나오는 문장만이 진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른 됨의 비참을 감출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효율성의 신화를 깨뜨려야 한다. 강제된 효율성과 생산성 가속 덕분에 얻은 것이 무엇이었던가?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어떤 미래가 닥치게 될까? AI를 하늘의 태양이나 달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될 가장 어린 세대가 앞으로 어떤 인간으로 자라게 될까?
생각은 원래 비효율적이다. 성찰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낭비된 시간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 싹튼다. AI가 파죽지세로 산업과 문화 생태계 전반으로 퍼져가는 시대에, 직접 쓰고 고뇌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가장 급진적인 저항운동이 된다. 0.5초의 틈새를 요새 삼아, 기계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시간을 지켜내야 한다.
임태훈, 「붉은 구문론(Bloody Syntax)」, 『문화/과학: 감속주의』 2026 봄 통권 125호(문화과학사, 2026. 03. 01.), 10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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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우리 사회를 전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로 보인다.
바뀌는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AI보다 더 못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저자의 말대로 깊은 읽기와 쓰기를 계속 감행해야 한다.
난해한 텍스트를 붙들고 멈춰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떤 단어가 가장 좋을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가장 자기다운 글이 나올 때까지 낭비하는 성찰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속을 멈추고,
도태되는 듯한 느낌에 속지말고,
오히려 자신의 시간, 다른 생명들과 공감하는 시간 속에서
더 깊은 시간들을 창조해 내야 한다. 빠른 시간이 아니라.
- 향린 목회 54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