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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늘 새로우신 하나님

by phobbi posted Apr 11, 2026 Views 1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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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4-11

2026. 04. 11.

 

먼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생명을 추동하는 에너지를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기독교인들은 종종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호흡과 영으로도 묘사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은 형태가 없는 무형의 존재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어 각자에게 주어진 형태에 생기를 불어넣는 무형의 존재다. 몇 년 전 어떤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연사였던 리처드 로어(Richard Rohr)가 다른 주제를 언급하는 도중 지나가는 말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무형(formlessness)이고, 예수는 유형(form)이며, 성령은 변형(transform)이다.” 나는 그의 말에 멈춰있느라, 그 후로 로어가 말한 대부분의 내용을 놓쳤다. 기독교 문화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유형으로 보지만, 성경의 이야기들은 종종 하나님을 유형이 아닌 무형으로 묘사한다. 히브리 성경은 하나님을 당신이 통제하고자 하는 형태로 만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제안한다. 대신 하나님은 숨, 사랑,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어떤 경우에 하나님은 아버지라고도 불리며 또 경우에는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하나님의 에너지에는 인격적인 본성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증언은 하나님은 명사보다는 동사라는 것이다.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세상 안팎으로 흐르는 생명력이다.

 

베티 프리스 지음/김복기 한승권 옮김, <관계 공간>(비공, 2025. 2. 3.), 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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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기독교 동네에서 그리고 신학에서 하나님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이해해 왔다.

그것은 인간 삶의 불안정 때문이었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빈구석이 있으면 안되고, 완전하고, 지고지선하고,

전능하고 전지하셔야 했다. 그런 분은 변하는 분이시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런 생각이 하나님을 우상에 가두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의 자유가 인간의 욕망이나 안전 욕구, 확실성 추구에 갇힌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열린 가능성 앞에서 자기를 내어놓는 모험의 결단이다.

확실한 안정성의 추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오래된 고백은

없던 적도 없고, 없어질 리도 없는 있음의 필연성을 깨부수었다.

창조적 자유가 매 순간 분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지금도 흐르고 변한다.

그 흐름을 타고 놀 줄 알아야 한다.

 

- 향린 목회 52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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