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10.
동양 사상에서는 대체로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사람의 인격성에 준해서, 특히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anthropomorphic)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조잡한 형태로 파악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 해도 유한한 존재이며, 인간이 지닌 여러 속성도 유한하고 상대적이며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되지요. 따라서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인간적 속성에 준해서 생각하는 것은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절대적인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격하하는 일로 여겨지는 겁니다.
인격신관은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격신관은 우리 인간의 각종 이기적 욕망이나 편견을 신에게 그대로 투사하여 자기들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유혹에 항시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 사상, 특히 철학적 사유나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궁극적 실재를 풍부한 인격성을 지닌 유일신 신앙보다는 주로 탈인격적인 철학적 일원론(philosophical monism)의 방향에서 사유하고 경험한 것입니다.
확실히 동양의 지혜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인격신관이 저급하고 유치하게 보이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특히 신이 정말로 우리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여겨 우리의 소원과 욕망을 마구잡이로 신에게 투사하는 행위는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지요. 그것이야말로 신을 격하하고 욕되게 하는 행위로 보이며, 인격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신이 너무나 인간을 닮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거지요.
한편, 그리스도교 전통은 신이 인간을 닮은 것이 아니라 본래 인간이 신을 닮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인간이 위대한 존재이며, 우리가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세계의 다른 어떤 존재보다는 인간에 준해서 말하는 것은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격의 깊이와 높이는 신에 대한 적절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거지요. 특히 인격신관에서는 사랑, 정의, 선, 자유, 창조성 같은 인격적 경험과 가치가 신적 실재성과 가치를 지님으로써 우주적 보편성과 타당성을 확보합니다. 이런 면은 인격적 유일신 신앙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차원의 진리일 것입니다.
길희성 지음, <보살예수>(현암사, 2004. 12. 20. 초판 발행), 2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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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대학원에서 <기독교와 세계 종교>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위논문 쓰면서 읽었던 책들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
게다가 불교 쪽 분들과 만나는 계기가 있어서 많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종교인들과의 진지한 대화는 역시 내 자신의 신앙과 종교적 사유를 벼리고 깊게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자기의 좁은 편견 속에 가두곤 하는데,
조금만 마음을 열고 넓게 보면 무한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의 넓은 지평으로 부르신다.
인격신관의 개념도 바로 이런 하나님의 관점을 얻으려는 고차원적 논의인데,
인간의 욕망을 신께 투사하고 말아서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에 언제나 투사가 불가피할 것이나,
그렇게 생겨 먹은 대로 생각하고 믿고 있다는 것쯤은 성찰해야 한다.
그것을 알 때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고,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넉넉히 얻게 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52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