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07.
2017년 풀러신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당시 신학교 총장이었던 마크 래버턴(Mark Labberton)은 기독교는 지배의 종교(religion of domination)가 아니라 유배의 종교(religion of exile)라고 설명했다. 기독교는 평범한 것이 아니라 특이해야(peculiar) 하며, 소비주의적이 아니라 반문화적이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약속의 땅에 살고 있지 않고, 유배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이해한다면, 교회는 더 충실하고 더 분명히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신, “미국 교회의 많은 부분을 규정하는 것은 두려움인 듯합니다. … 지금 이 순간의 위기는 실제로 우리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의 깊은 초대가 아닐까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초대가 아닐까요? 우리가 살아 숨 쉬며 경험하는 것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오늘 우리는 신실한 유배자(faithful exiles)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알고 계시며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그것이며, 그들을 회복하고 새롭게 만들어, 유배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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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웃사이더로 느끼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유배자 사고방식이 솔직히 말해 후천적으로 익힌 취향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렇다. 만약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면서, 나의 가치관이 사방에서 반영되고, 박해나 낙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성애자 백인 개신교인으로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불의는 사회의 변두리에서만 보인다.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특권이었다. 나는 증언할 수 있다. 유배자의 삶은 때로 좌절스럽고 도전적이며 위험하기도 하지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그것은 억압이라기보다 구원의 원천이며, 겸손과 함께 아파하는 연민으로의 부름이다.
조너선 라우치 지음/강무천 옮김, <에수, 민주주의의 영적 토대: 크리스천 파시즘과 시민신학의 희망>(한국기독교연구소, 2026. 03. 30. 초판 1쇄), 19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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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극우 개신교 또한 끊임없이 지배의 자리에 서려고 한다.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그들은 이승만 정권 때 얻은 기득권의 향유로부터 시작되었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 아부하며 탄탄한 자리를 마련해 왔다.
그들에게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받은 나라로 언제나 이상화된 상태로 존재했고,
그들은 반공주의를 내면화하면서 타자에 대한 혐오를 통해 자신들의 성을 구축했다.
그러다가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한 화해 분위기로 돌아서고,
기존의 기득권 체제에 균열이 가자, 이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때부터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연이어 박근혜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박근혜가 탄핵 되자 또 다시 위기에 내몰렸다.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은 광화문 아스팔트 기독교를 만들어냈고, 아직까지도 계속 된다.
위 책은 미국 기독교가 제 몫을 하지 못했기에,
기독교 자신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약화하는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땅에서 과연 기독교란 무엇인가?
극우 개신교 집회를 볼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집회에는 욕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겸손과 함께 아파하는 연민이 보이지 않는다.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무엇이 이런 기독교를 탄생시킨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힘에 대한 숭배로서의 종교적 욕망의 분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닮으려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는 무관하다.
그리스도교라는 탈을 썼을 뿐, 그리스도교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마치 그리스도교인 양 과잉 대표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만든 강력한 원인 또한 기존의 주류 기독교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매우 씁쓸한 지점이다.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셨다는 말이 생각난다.
“교회에도 복음이 필요하다.”
- 향린 목회 52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