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06.
누에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우리나라 땅 생김이 누에 같지 않은가? 어떤 이는 호랑이라 하고 어떤 이는 토끼라 하지만 차라리 누에라 할 것이다.
힘을 자랑하고 싶으면 호랑이라 할 것이고, 업신여기려면 토끼라 하겠지만, 이럴 것도 저럴 것도 아니요, 누에처럼 겸손히 누에처럼 부지런히, 누에처럼 평화롭게 살 것이니라. 그 땅만 아니라, 그 사람도 누에 같다. 그럼 또 누에와 같이 변화해야 할 것이다. 구대륙이, 한 뽕잎 아니냐? 잠식(蠶食)이란 말이 있지?
그 힘은 비록 약하고, 그 입은 비록 적으며,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것 아니어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먹는 날, 천하라도 다 먹을 수 있다. 유교문화도 옴질옴질, 불교문화도 옴질옴질, 기독교도 옴질옴질, 과학에 가 붙어도 살금살금, 정신에 가 붙어도 살금살금, 다툴 것 없이, 시기할 것 없이, 떠밀면 돌아눕고, 뺏으면 또 다시 가 붙으면서, 소리도 없이, 떠듦도 없이 먹고는 자고, 자고 나면 안 껍질 벗고, 새로 나서 또 먹어서 애기 잠, 두 잠, 석 잠, 그리고 한 잠을 자고 나면 백옥(白玉) 같은 문화의 전당 지을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나비 같은 생명 날아 나오지 않겠나? 누에-번데기-나비의 생활철학이야말로, 씨ᄋᆞᆯ의 생활철학이다.
함석헌, <함석헌 전집 2, 인간혁명의 철학>(한길사, 1991. 2. 10. 제10판),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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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을 보내고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
부활 후 첫날이다.
함석헌 선생님의 누에 철학을 다시 곱씹는다.
누에-번데기-나비의 생활철학을.
겸손히 부지런히 그리고 평화롭게.
옴질옴질 구대륙을 뽕잎 삼아 먹고 또 먹고,
한잠 자면서 그것을 내 안에서 새기고 녹이고 흡수하여 나비 될 때까지
과학과 정신 양 날개를 잡아 날아오를 때까지
그렇게 한걸음 또 한걸음.
- 향린 목회 519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