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05.
그 하는 내용에보다 그 하는, 무엇을 해 보자는, 가만 있지는 않는, 지켜보는 그 마음에 있다. 그것이 생명이다.
생명은 지속이다. 끊이지 않고, 끊어졌다가도 다시 잇는 것이 생명이다. 또 한번 해보는 것이 생명이다. 지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져도 졌다 하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놓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살려니 되려니 믿음이다. 없어도 믿는 것, 없으면 만들기라도 하자는 것이 믿음이요, 그 믿음이 생명이다.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는지 누가 아느냐? 다만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믿는다. 믿음으로 있다. 있음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수양에는 ‘오래’가 비결이다. 아무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아도 믿고, 그 하는 일을 유일의 소득으로 알고 그저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도다. 길 가는 밖에 길이 따로 있고 목적이 따로 있는 것 아니다. 하는 그 마음, 그것이 곧 목적이요 수단이요 하는 자다. “구즉통(久則通)”이라, 오래 하면 뚫린다.
베르그송의 순수지속(純粹持續)이 이것일까? 바울의 믿음은 이것일까? 참선의 선은 이것일까? 모른다. 그들의 생각했던 것이 문제 아니다. 내가 할 뿐이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줄을 하나 잡았을 뿐이다. 윌리엄 블랙이 황금 실꾸리라 했것다. 누가 던진지 모른다. 내가 없는 중에서 뽑아낸 줄인지, 옛날 허영심 많은 임금이 속은 것 같은 허무의 줄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내가 한 줄을 돕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점은 그것을 돕는 일이다. 사실이 아니고 꿈이면 나중에 허무가 달려 나와도 나올 것이다. 실재(實在)보다도 허무를 잡으면 더 큰, 더 참된 소득 아닌가.
무(無)는 유(有)보다 크다. 무한히 돕는 놈, 지키는 놈한테는 견딜 자가 없다. 놓지 않는 야곱에게는 하나님도 못 견딘다. 그렇다. 하나님과 영원·무한·절대와 씨름을 하잔 것이 생명이요 도(道)다. 씨름 하는 밖에 씨름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요, 이기는 자 밖에 진 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알면 5천년 역사 바로잡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이리라.
함석헌, <함석헌 전집 2, 인간혁명의 철학>(한길사, 1991. 2. 10. 제10판), 32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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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아침이다.
생명의 하나님께서 가만 있지 않으시고, 무엇이라도 하신 날이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해 보자는 것이다.
남이 하니 나도 덩달아 하는 것 아니고,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 아니고,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그렇게 죽음으로 끝낼 수는 없기에
반드시 해야 했기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은 이김이고, 죽음을 뚫고 나온 것이기에 다시 죽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온 세상이 절망이어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믿음으로 있고, 있는 자는 살기에, 삶 자체가 희망이 된다.
부활의 아침!
다시 한번 하나님과 영원·무한·절대와 씨름을 시작한다.
- 향린 목회 51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