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04.
정신은 고통이다. 정신은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새로운 인식에, 더 높은 앎과 의식의 형태에 도달한다. 헤겔에 따르면 정신의 특징은 “모순 안에, 따라서 고통 안에 […] 머무른다는 것”이다. 정신은 형성과정에서 자신과의 모순에 빠진다. 정신은 분열된다. 이 분열, 이 모순은 고통을 준다. 고통은 정신이 자신을 형성하도록 이끈다. 형성(Bildung)은 고통의 부정성을 전제한다. 정신은 더 높은 형식으로 발전함으로써 고통스러운 모순을 극복한다. 고통은 정신의 변증법적 형성의 동력이다. 고통은 정신을 변환시킨다. 변환(Verwandlung)은 고통과 결합되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정신은 동일한 상태에 머무른다. 형성의 길은 고통의 길(via dolorosa)이다. “따라서 다른 것, 부정적인 것, 모순, 분열은 정신의 본성에 속한다. 이 분열 속에서 고통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 고통이 세계 안으로 들어왔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사람들이 잘못 생각했듯이 고통은 외부로부터 정신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정신은 “절대적인 분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만 진리를 획득한다.” 정신의 위력은 “부정적인 것을 똑바로 쳐다보고” “부정적인 것의 곁에 머물러 있을 때” 드러난다. 이에 반해 “부정적인 것을 외면하는 긍정적인 것”은 “죽은 가상”으로 쪼그라든다. 고통의 부정성만이 정신을 살아 있게 해준다. 고통이 삶이다.
한병철 지음/이재영 옮김, <고통 없는 사회>(김영사, 2021. 4. 15. 1판 1쇄 발행),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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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처형된다는 모순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이 나오는 것이다.
강력한 힘의 메시아가 아니라, 무력하게 죽어가는 메시아가 진정한 구원자라는 분열 속에서
살아 있는 정신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규 속에서만
“이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적 탄성이 터져 나온 것이고,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 분열과 고통 속에서 예수는 인류의 정신이 될 수 있었다.
- 향린 목회 51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