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29.
시몬 베유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신이 화가의 눈으로 자신의 피조물을 바라본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물질의 아름다움에 대한 베유의 생각이다. 물질은 신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신의 뜻에 순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물론 인간도 물질을 인간 자신의 목적에 순응하게 만든다. 그러나 물질의 이 같은 강요된 순응은, 신에게의 순종에 기반을 둔 자연의 아름다움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한다. “들에 핀 백합, 일하지도 않고 길쌈하지도 않는 백합을 보라는 그리스도의 조언은 물질의 순종을 모범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백합은 이 색이나 저 색을 띠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의지를 발휘하지도 않았고 이 목적을 위해 모종의 수단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백합은 자연의 필연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수용했다. 그런 백합이 화려한 옷감보다 무한히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이는 백합이 더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종하기 때문이다. 옷감도 순종하지만, 신에게가 아니라 인간에게 그러하다. 물질은 인간에게가 아니라 신에게 순종할 때만 아름답다.”(<신을 기다리며> 중에서)
물질은 생명이 없지 않다. 단지 수동적이고 순종적일 따름이다. 우리는 물질의 수동성을 생명 없음과 혼동한다. “물질은 철저한 수동성이요 신의 의지에의 철저한 순종이다. 물질은 우리가 따를 완벽한 모범이다. 신에게 순종하는 것과 신 외에 다른 존재는 있을 수 없다. […] 세계의 아름다움에 깃든 날것의 필연은 사랑의 대상이다. 덧없이 출렁거리는 파도나 거의 영원한 산주름에 깃든 중력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신을 기다리며> 중에서) 순종하는 자는 중력의 필연성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우아함은 의지가 아니라 중력에서 온다.
한병철 지음/전대호 옮김, <신에 관하여>(김영사, 2025. 12. 15. 1판 1쇄 발행), 1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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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보다는 순종,
중력에서 은총을 발견하는 자의 눈은 얼마나 대단한가?
물질이 생명의 부재가 아니라 신에게 철저하게 순종하고 있다는 깨달음은
근대적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은 많은 사상가들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운행을 보며 깨달은 것도 일맥상통한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 『論語』 「雍也」)는 말이나, 공자가 냇가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했던 한마디의 말!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 쉬지를 않네”(逝者如斯夫! 不舍晝夜. 『論語』 「子罕」)라고 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 향린 목회 51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