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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긴 생각

by phobbi posted Mar 27, 2026 Views 14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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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27

2026. 03. 27.

 

사상이 빚진 자의 것이라면 그것은 과거를 길고 무겁게 기억하는 자의 창의적 개입에 의해 생성된다. 그는 후생(後生)이라는 이유로 (하이데거의 지론과는 달리) 대개 생각(denken)할 뿐 감사(danken)하지는 않겠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그 생각이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미래를 향할 때 곧 감사가 된다. 그래서 사상이 형성되는 형식은 원리상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모든 게 다른 모든 것에 얽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유물론적 기술주의와 자본주의에 순치된 채 살아가는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가능성의 씨앗이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형이상학이 나날의 인식을 바꾸고, 우리 행위를 재조정하는 윤리로 구체화되는 데에는 또 다른 형식의 노동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객담이 아니라 노인의 회고담처럼) 긴 생각은 자연스레 성찰로, 감사로 이어진다. 이것은 사실 정신은 자란다라는 내 지론과 깊이 결부된 결론이다. 물론 그 계기의 하나는 양자적 상호연관성(quantum interconnectedness)과 동기감응(同氣感應)과 텔레파시에서부터 평상시의 모방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요컨대 사소한 물건 하나에서부터 고도의 정신력에까지 닿아 있는 존재론적 불이(不二)의 현실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불교적 깨침이 아니더라도 내남이 얽혀서 상호 영향의 빛과 그늘 아래 존재하고 있는 근본 현실을 익힌다면, 깊고 긴 생각과 감사 역시 서로 이어진다. 달리 설명하자면, ‘긴 생각은 이미 그 자체로 자기성찰과 순화(純化)의 과정이므로 정신이 자라가게 되어 있는 인간으로서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고집과 원망으로부터 서서히 자라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긴 세월의 풍화와 침전이 대개 현실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법이며, 그 숙려와 비움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신 자체도 순화 혹은 성화(聖化)의 길을 밟기 때문이다. 거꾸로 돌려 말하자면, 우리에게 알려진 인류 보편의 사상으로서 남과 세상을 원망하고 부정하고 타매하고 기롱하는 식으로 짜인 것은 없다.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타인을 풍자하고 냉소하는 아이러니는 사사로운 자유의 형식일지언정 사상에 이르지는 못한다. 내면의 성찰과 정화의 긴 과정을 거친 후에도 이런 종류의 부정적인 내용을 그 열매로서 남기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김영민 지음, <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글항아리, 2025. 11. 17. 초판발행), 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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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생각이 중요하다.

느리게 생각하기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지만,

분주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느리게 생각하기보다는

사유의 지속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즉 길게 생각하기가 얼마나 가능하느냐 하는 문제다.

 

저자의 말처럼 긴 생각이 그 자체로 자기 성찰과 순화의 과정이라면,

현대 인류가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것은 이미 지나온 것이라도

미래와 연관 지으면서 현재를 창조해 가는 사유를 지속하는 일이다.

 

사유가 길어지는 이유는 그리고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짚어가야 하는 이유는

모든 게 다른 모든 것에 얽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즉 복잡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은 무색투명하게 이뤄질 수 없다.

인간 자체가 복잡하고, 다른 존재들과 얽혀있는 삶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식은 있는 그대로의 인식일 수 없고, 사실은 전부 하나의, 각자의 해석일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세상사란 것이 얽히어 타자에 의해 지금의 내가 생성된다는 것을 진실로 깨닫게 될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고마울 따름이다.

 

- 향린 목회 50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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