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26.
진정한 의미의 모든 존재는 완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 있다. 이런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데카르트의 통찰 속에 함의되어 있었다. 데카르트는 회의 불가능한 존재인 생각하는 자아가 생각하기에 앞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생각하는 동안 존재한다. 나는 사유 행위를 통해 존립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주어-술어의 구조로 운위되는 자연언어와 이로부터 파생된 실체-속성의 도식을 이 근원적 사태에 적용한 결과, 그 발견의 진정한 의미를 간파하지 못하였다. 그는 사유주체인 나를 실체로, 즉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로 이해하였다. 이 실체는 특정 형태의 다양한 사유를 우연적 속성으로 갖는다. 우연적 속성인 사유는 다양하게 변화하지만 그 주체인 실체, 즉 사유 일반을 본질로 하는 실체는 이들 특정한 사유의 동일적 담지자로서 불변한다. 그러나 이런 동일자는 우리가 결코 마주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경험적 근거가 없는, 논리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추상이다. 구체적인 경험의 지평에서 보자면 자기 동일적 주체란 추상적 존재, “공허한 현실태”(vacuous actuality)(PR 29, 167)이다. 구체적 존재, 진정한 의미의 나는 사유 속에서 사유를 통하여 구성되고 있는 과정으로서 존립한다. 그러나 사실상 사유는 이 존립의 생생한 현장을 남김없이 뒷받침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개념이다. 사유는 인간이 갖는 경험 일반의 극단적이고도 우연적 양태에 불과하다. 나의 존립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이 총체적인 경험 일반이다. 나라는 인간존재의 구성적 요인은 단순히 나의 사유가 아니라 나의 경험 전체인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무엇에 대한 경험으로서 존립하며 경험을 떠나 존재하는 나는 추상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구성된다. 그리고 경험의 소멸과 함께 소멸한다. 나의 존재는 생성 소멸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 나의 존재 방식을 모든 존재자의 존재 방식으로 유비적으로 일반화시킨다. 진정한 의미의 모든 존재는 경험을 통해 자기를 구성하는 주체적 과정으로서 존립하고, 이 경험의 과정을 떠나서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존재일 수 없다. 이 주체적 존재는 경험과 더불어 생성하고 경험과 더불어 소멸한다. 이것은 “경험의 행위를 일반화한 것으로 이해되는 현실태의 관념”(AI 304)이 탄생하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현실태란 자기구성의 활동 중에 있는 존재이다. 현실 세계는 이런 단위 존재들의 구성체이다. 화이트헤드는 이 단위 존재를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또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라고 부른다. 현실적 존재는 그것의 경험, 곧 생성 가운데 존립한다. 화이트헤드의 표현으로 하자면 “현실적 존재의 ‘있음’은 그 ‘생성’에 의해 구성된다.”(PR 23.). 화이트헤드는 이를 “과정의 원리”(principle of process)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것은 만물유전에 대한 직관이 하나의 궁극적 원리로 정착되고 있는 현장이다.
문창옥 지음,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통나무, 1999. 6. 29. 1판 1쇄), 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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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알게 된 철학자 화이트헤드를 옆에 끼고 끙끙대다가,
이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리가 맑아졌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창옥 선생님을 모시고 하얗게 새웠던 도올서원에서의 밤이 지금도 뚜렷하다.
화이트헤드를 만난 덕에 고정된 실체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고,
추상 관념에 머물러 잘못 놓은 구체성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법을 익혔다.
“있음”은 매 순간 생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없었던 적도 없고 없어질 리도 없는 원래 있음이 아니라는 사실!
이런 과정의 원리로부터 실재를 바라보는 관점을 얻은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삶은 머물러 있기보다는
매 순간 새롭게 생성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 들고 차근차근 읽어서
그때는 애매하고 모호하던 것들을 속시원하게 다시 이해하면서,
2000년 그리스도교 사상사를 정리하고 싶고,
또 언젠가는 예수와 바울에 이어 초기 기독교의 정신사를 짚어보고
이어서 2,000년 신학 사상사를 다루면서 곁들여 철학사도 함께 나눠볼 생각이다.
- 향린 목회 50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