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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공부의 기본기

by phobbi posted Mar 25, 2026 Views 13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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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25

2026. 03. 25.

 

내 경험에 따르면 공부에도 먼저/늘 기본기를 챙겨야 한다. 기본을 갖추지 못한 채로는 입실(入室)은커녕 승당(陞堂)조차 못한 채로 중도이폐할 수밖에 없다. 젊어 게을렀고 좋은 선생을 만나지 못한 만학도가 이윽고 공부를 결심해도 쉬 좌절하는 것이 그 기본()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공부의 종류나 갈래마다 상이한 기본기가 있겠지만, 내 관심사에서 줄 세워본 기본기는 대략 세 가지다. 그 첫째는 늘 강조해온 태도. 재능보다 태도를 앞세우는 것은, 그 포괄적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도는 재능과 달리 그 자체가 공부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이기도 하다. 공부는 제 마음대로하는 게 아니다. 제 마음(생각)을 어떤 정해진 태도 속에 넣어 갈고 닦는 것이다.

 

둘째는 언어적 감수성이다. 공부의 태반은 말/글로써 하고, (좋은) 책읽기야말로 공부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다. 그래서 언어라는 도구를 가려쓰는 솜씨나 감성을 키우지 않으면 공부가 깊어지기는 어렵다. 망치나 거름체나 신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듯이 학인은 말/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잘 알려져 있듯이 말/글이 단지 도구적 대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학인이라면 우선 그 도구적 효율성(instrumentality)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어떤 의미에서 공부, 특히 철학과 인문학적 공부는 나날이 말/글의 도구적 효율성을 높여 사람과 그 세상을 보다 정교하고 적실하게 잡아내는 데 있다.

 

마지막은 몸이라는 기단(基壇)이다. 공부가 대체로 의지의 작용/부작용이라면-물론 의지라는 것도 방아쇠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곧 내가 말해온 알면서 모른 체 하기이기도 하지만-이 몸이라는 기본()은 그 위상이 애매하다. 태도와 언어적 감성에 비해 몸은 이른바 자율신경적인 성격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몸을 살펴야 하며, 이 몸의 이치를 알아 공부의 실천 속에 내재화하는 게 긴 걸음일 수밖에 없는 공부길에서는 긴요하다.

 

김영민 지음,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늘봄, 2022. 09. 10.),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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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이 정조 임금으로 등장하는 영화 역린에서 계속 나오는 중용의 구절이 떠오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中庸23)

 

세밀하고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런 태도가 결국 공부의 길을 결정하는 것이고, 지속적인 몸의 훈련과 말/글쓰기에 대한 감각을 높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내 지도교수인 정재현 선생이 강의를 하실 때면, 너무나 빠르게 마구 나오는 입말인데도 정제된 철학적 사유와 꼼꼼한 논리 구조 속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발화되는 것을 보고 늘 깜짝 놀라곤 했다. 수업 시간마다 훈련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그런 선생님들을 따라가려면 나는 한참 멀었는데~ 그러니 오늘도 그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보는 수밖에.

 

- 향린 목회 50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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