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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봉헌과 기쁨의 주일 | 2026-03-15 | 함세웅

by 이민하 posted Mar 21, 2026 Views 9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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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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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봉헌과 기쁨의 주일

(신 34:1-12, 살전 2:1-8, 마 22:34-46)

 

함세웅 신부

 

[개신교 목사님들과 함께]

향린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 목사님을 비롯한 전도사들, 또 교우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그제 눈 수술을 받아서 조금 몸이 불편하고 목도 잠겼는데, 사순절이니 희생으로 여기시고 함께 묵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집에서 식사를 하지만, 가끔 외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 특별한 일이지요. 저에게는 오늘 이 향린교회에서의 예배가 아주 특별한 외식입니다. 참 훌륭하고 모든 것이 맛있습니다. 여기 계신 향린교회 성도들께서도 늘 목사님 말씀만 듣다가 가톨릭 사제의 말을 들으시니 조금 맛이 다를 것입니다. 이것 또한 특별한 음식입니다. 조금 다른 음식을 맛보신다는 마음으로 오늘 예배에 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성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전 단계의 예배였는데, 저도 성가를 들으면서 또 목회기도와 성서 말씀을 들으면서 새롭게 많은 것을 묵상하였습니다. 새로운 체험입니다. 제가 향린교회에 올 때마다 향린교회의 역사를 다시 읽어 봅니다. 향린, 곧 향기로운 이웃이 되겠다는 뜻으로, “1953년 5월 17일에 안병무 교수님 등 열두 분의 소장파 신도들이 세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병무 교수님과 그 열두 분을 저는 늘 기억합니다.

안병무 교수님과는 1976년에 함께 옥고를 치른 경험도 있고, 또 안 교수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아주 진취적인 신학자이신데, 때로는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실 때 조금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사회학적으로만 예수님을 분석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들으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향린교회가 안병무 교수님을 통해 설립되었다는 것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1959년에 기장에 가입한 공동체가 되었고, 1974년에 김호식 목사님이 오셨으며, 1980년에는 초창기로 돌아가자는 운동과 함께 다소 분열의 조짐이 있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역사 자체가 통합과 분열의 역사였고, 또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사제, 아우구스티노 수사회 신부로서 열심히 사역하셨습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의 횡포와 중세의 잘못된 현실을 알고 개혁을 주장하다가 파문을 당하였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교회를 갈라서게 하면서 개신교를 세우게 되었지요.

제가 2017년 마르틴 루터 개혁 500년을 기념하여 개신교 목사님들과 모임을 가졌을 때, 역사 전공이신 개신교 목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사제였습니다. 가장 엄한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습니다. 중세 교회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개혁을 주장했지만, 그분의 한계는 그것을 주창하다가 농민 전쟁 때 농민들 탄압에 앞장섰다는 데 있습니다. 귀족과 손을 잡고 개혁으로 이끌었다는 점이 루터의 한계입니다. 1517년 그 당시 마르틴 루터는 죽었어야 했습니다. 순교자가 되었어야 하는데, 순교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루터의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목사님들께서 “그 말이 맞다, 맞다” 하셨습니다.

 

[고난은 하나되는 은총의 계기]

저는 개신교를 새롭게 만난 것이 1974년 박정희 유신 독재 때,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였습니다. 독재에 맞서 싸우셨던 훌륭한 목사님들, 개신교 전도사들, 신자들, 청년 학생들, 시민들, 우리 가톨릭 신자들까지 함께 옥고를 치른 상황 속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때 “아, 이 고난의 시기가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묶어 주는 은총의 계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예배당에 와서 기도도 하고 말씀도 전하는 은총의 시간 또한 마련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1940년대 독일 히틀러 독재 치하에서 많은 사람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 교수들, 공산주의자들, 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개신교 신자들까지도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핍박받는 과정 속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의 사제, 목사님들이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인데 그걸 깨닫지 못했구나!” 하고 자각하면서 교회 일치 운동의 싹이 트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시기를 겪으면서 갈라진 그리스도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1940년대 히틀러의 박해 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개신교회에서부터 희망의 신앙이 싹텄고, 가톨릭도 1960년대 교회 쇄신을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면서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일치 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이것이 60년, 70년대를 거쳐오면서 제가 체험했던 저의 작은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핍박받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교만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인들과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인권을 위해, 인간의 가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손잡고 함께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는 건물 안에 갇힌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아가 세상과 함께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여야 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바로 안병무 교수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각자들이 이미 1950년대부터 깨달았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을 실천적으로 행동에 옮기신 분들이 우리 향린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이라고 저는 확신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또 2대 담임목사님이시고 통일운동에도 열정적으로 활약하셨던 홍근수 목사님이 시무하셨을 때, 1993년 교회 40주년을 맞이하여 강남향린교회 등 여러 교회가 새롭게 생겨났고, 2003년 이후에는 조헌정 목사님이 향린교회에서 시무하셨습니다. 조헌정 목사님과 함께 저도 민족 일치와 화해를 위한 통일운동에 함께 노력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예배에 한 두세 번 참석했는데, 국악으로 예배하고 성찬 때도 과감하게 떡을 사용하시며, 외국인 노동자들, 통일운동을 지향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바로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기존의 유대교를 넘어서 새로운 인간을 기초로 한 보편적 구원관을 펼치셨던 삶의 재현이 아닐까 생각하며 묵상합니다. 향린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 안에서 자유를 지닌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저는 이렇게 정의하면서 찾아왔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김희헌 목사님, 그리고 오늘까지 한문덕 목사님께서 시무를 맡고 계시는데, 아름다운 공동체인 향린교회가 개신교회의 표본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길잡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3월 15일입니다. 1960년 이승만 독재 때 부정선거가 있었던 날입니다. 1960년 3월 15일, 그 당시 저는 서울대교구 대신학교(THE MAJOR SEMINARY OF THE ARCHDIOCESE OF SEOUL) 1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4.19를 맞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66년 전에 이승만이 독재를 펼쳤던 그 부정선거와 억압을 함께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민주·민족 공동체를 꿈꾸며 오늘 예배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전적 봉헌과 기쁨의 주일]

목사님께서 저에게 오늘 설교 제목을 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주일에 강론할 때 그날 성경을 가지고 전하는 경우가 많지만, 목사님께서 제목을 달아 달라고 하셔서 제가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내 드렸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울 때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사제가 되는 것은 전적 봉헌자여야 한다. 부분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 전적인 봉헌, 영어로는 Total Consecration,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다”라는 말이었기에, 제가 감히 이 제목을 말씀드렸고, 두 번째 제목은 ‘기쁨의 주일’입니다. 제가 오늘 장미빛 영대를 매고 나왔는데, 목사님께도 허락받았습니다. 저 혼자 이렇게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사순절이 주일을 제외하면 40일인데, 오늘이 딱 중간 주일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순교자들을 칭송하는 주일로 정하셨지만, 전례적으로는 기쁨의 주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간 주일이 기쁜 이유는, 중세 때 수도원이나 신학교에서 사순절 동안 고신극기(苦身克己)하고 단식하며 지내다가 40일이 너무 길어지니 중간에 한 번 쉬어 가자는 의미로 이날만큼은 고기 국물을 주고, 침묵도 풀고 대화도 하며 쉴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산행을 할 때도 계속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내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되돌아보고,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올려다보며 점검하고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중간 주일입니다. 그래서 사순절 처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지내신 분들은 같은 마음으로 남은 기간을 잘 보내어 은총의 부활을 맞이하시고, 혹시 지금까지 집중하지 못한 채 지내오신 분들은 오늘부터라도 다짐하여 남은 사순절을 잘 지내고 고난의 시기를 지나 은총의 부활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니 잠시 쉬어 가는 의미에서 오늘은 기쁨의 주일입니다. 우리 향린교회 공동체 구성원들께서 오늘 기쁨의 주일의 의미를 생각하시며, 향린교회의 역사와 함께 내가 신앙을 지녔던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의 삶을 재점검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3.1 민주구국선언을 기억하며]

한 목사님께서 오늘 예배 인사를 하시며 말씀하셨는데,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문동환 목사님 등 목사님들과 함께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후에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18명이 기소되고 11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안병무 교수님, 문동환 목사님, 문익환 목사님, 저와 같은 사제들, 김대중 전 대통령 등 11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후에 김지하 시인 어머니의 호소문을 문정현 신부님이 대독하시고, 우리의 순서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문동환 목사님께 시간을 드렸습니다. 문동환 목사님께서는 즉흥 설교를 하셨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34장을 읽으시고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성경을 많이 배웠지만, 목사님과 같은 해석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제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자술서를 쓸 때 문동환 목사님의 그날 설교를 쓰라고 해서 제가 썼습니다. 제가 너무 잘 써서, 문동환 목사님을 감옥에서 만난 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제가 그날 정보부에서 목사님 설교를 썼는데, 목사님 설교보다 제가 더 잘 썼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감동 받은 것은 오늘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120세의 모세가 40년 동안 그 고집 센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갑니다. 십계명 판도 받았지만, 백성들은 또 하느님을 배반합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항변하기도 합니다. 뱀에 물려도 죽고, 목말라 죽을 뻔하고, 바위에서 물도 나오는 많은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여든 살에 출발한 모세가 120세가 되었습니다. 느보산 꼭대기에서 저편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저기가 약속의 땅이구나” 하며 바라보는데,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여기까지다. 바라보기만 하라. 들어가지는 못한다” 하십니다. 모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성서는 기록하지 않지만, 인간 모세로서는 섭섭하지 않았겠습니까? 40년을 이끌어 왔는데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는 바라만 보라.” 그런데 모세가 눈을 감고 죽을 때 그 눈이 맑았다고 합니다. 120세에 죽는 모세의 눈이 맑고 정력이 흘러넘쳤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은 그 당시 58세였습니다.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의 나이가 58세였는데, 그는 권력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욕심이 많았고, 헌법을 고치며 영구독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눈을 보라. 눈이 흐리다” 하며 문 목사님이 설교하셨고, 박정희의 눈이 맑아지도록, 모세를 본받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교를 마치셨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이 이렇게 30분 동안 설교를 하셨고 그런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아, 참 감동이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유정 교수님께서 문익환 목사님이 준비하신 3·1 민주구국선언문을 읽으셨습니다. 읽으신 원문을 저에게 주셨는데, 그 당시에 그런 문서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었으니 제가 명동성당 주교관 소각장에서 그것을 태워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문서는 사실 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태웠으니 이제 원본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사는 잘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들은 이야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술을 마시다가 그 뉴스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듣고 분노하여 “다 구속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지요. 합리적인 실무자들이 있었다면 설명을 해야 했을 텐데,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미사 봉헌하고 설교하고 기도했던 사제, 목사, 교수들이 무조건 구속된 것입니다. 그러고는 3월 10일에 발표하기를 “국가 전복 기도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제가 해석할 때는 잠언서의 말씀, “사람은 계획하지만 일을 완성시키는 분은 하느님이시다”라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박정희의 눈먼 행보를 통해 이 사건을 크게 만들고 국제사건으로 만드셔서 전 세계가 한국에 집중하게 하셨습니다. “박정희 독재는 불의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바로 1979년 10월 26일, 아시는 바와 같이 박정희의 비참한 말로가 3년 뒤에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3·1 사건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입니다.

안병무 교수님께서는 감옥에 계실 때 숙고하시며 우리를 붙들고 “이것은 감옥의 사건인데, 이것이 사건의 신학이야. 사건의 신학. 하느님은 사건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뜻을 완수하시는 거야”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안병무 교수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그 뒤부터 사건의 신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우리 삶 안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크고 작든 그 뜻을 발견하는 것이 아름다운 신앙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시 신학 공부를 조금 더 원하시는 분들은 삼성문화문고 83번에 있는, 네덜란드 신학자 아돌프스라는 신부가 쓴 『신의 무덤』(박갑성 역)이라는 책을 읽어 보셔도 좋습니다. 이 책에서는 가톨릭 사제가 가톨릭 교회를 무섭게 비판합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무덤이 나온다. 하나는 회칠한 무덤이고, 하나는 빈 무덤이다. 그런데 오늘의 화려한 가톨릭 교회는 회칠한 무덤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던 성전의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거짓과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공동체는 예수님이 꾸짖으신 회칠한 무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무덤은 빈 무덤이다. 비워야 한다. 마음도, 욕심도, 모든 생각도 비울 때 예수님의 부활이 가능하다.” 하면서 수도 공동체와 신앙인들의 비움의 자세를 강조한 책이 있습니다. 저희는 감옥에서 다 빼앗겼습니다. 다 빼앗기니까 더 빼앗길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가들도 그런 내용을 썼습니다. 감옥에 가면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내 마음속에 모셔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인데, 우리가 죽을 때는 다 놓게 됩니다. 세상을 떠날 때 바칠 수 있는 마지막 나의 정성스러운 기도가 무엇일까. 바로 1976년 사건과 함께,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우리 순교자들의 죽음과 함께 묵상하면서 또 다짐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웃 사랑이 자기 초월의 비결]

오늘 제2독서는 데살로니카전서 2장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카는 아름다운 그리스의 동쪽 항구 도시입니다. 사도 바울께서 50년경에 첫 번째로 쓴 편지인데, 고린도에서 쓰신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호소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도로서 권리가 있지만, 내 권리로 말하지 않겠다.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한다.”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 그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 성령의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가정에서는 물론 세상에서, 공동체에서, 또 온 인류를 위해서,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며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데살로니카전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바로 이런 자세가 전적 봉헌, 어머니의 마음이 전적 봉헌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하며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완성체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겠지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바로 자기 초월의 삶입니다.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었고, 또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웃 사랑이며, 그것이 자기 초월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2장 말씀의 첫 번째 대목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핵심입니다. 아시는 대로 유다인들에게는 613조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라”가 248조, “무엇을 하지 말라”가 365조의 율법이었는데, 하지 말라는 율법이 더 많습니다. 365일 금령이 있는 셈이지요. “하라” 248조, “하지 말라” 365조, 이 613조의 율법에서부터 많은 법이 파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법을 한마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압축해 주셨습니다. 오늘 사순절 넷째 주일, 하느님 사랑에서 선택한 이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두 번째 대목은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신데 어떻게 우리의 구세주 주님이 되셨는가 하는 예수님의 반문입니다. 이제 시편 110장의 말씀인데, 다윗 또는 다윗의 후손들이 바쳤던 기도 내용입니다. 우리 모두도 어떤 의미에서는 다윗의 후손이고, 또 주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례받은 모든 이들, 만인 사제 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과 같은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긍지를 가지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주님, 새로운 중심이 되기로 다짐하면서 오늘 한 주일과 남은 사순절을 잘 보내며 은총의 부활을 맞이하면 참 좋겠습니다.

 

[사람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마지막으로 마르틴 부버의 성서 해석 한 말씀을 드리면서 제 말을 마치겠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과일을 따먹고 자기들이 벌거벗은 모습을 알고 숨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하고 크게 부르십니다. 짓궂은 간수가 부버에게 “하느님은 다 아시는데, ‘아담아 어디 있느냐’고 무엇 때문에 물으셨어요?” 하고 장난스럽게 질문했습니다. 갇혀 있던 부버가 그 간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4천 년 전에 하느님께서 죄지은 아담을 부르신 그분께서는 지금 당신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간수야, 너 지금 어디 있느냐? 네가 있는 자리가 바른 자리냐? 너 어제 어디 있었고, 내일은 어디 있을 것이냐? 네가 있는 자리가 떳떳한 자리냐? 부끄럽지 않은 자리냐?” 이렇게 해석하니 간수가 마음이 켕겨서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하며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성서 이야기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 주는, 우리 시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우리가 고백합니다. 오늘 이 기쁨의 주일의 의미를 간직하면서, 목사님과 봉사자들, 우리 모든 성도들께서 남은 3주간 잘 지내시며 영광의 은총의 부활을 맞이하면 참 좋겠습니다.

 

묵상하고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그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걷는 축복과 기쁨을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