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요구에서 감사로

by phobbi posted Mar 20, 2026 Views 384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6-03-20

2026. 03. 20.

 

하나님은 몽상(夢想)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몽상은 사람을 교만하고 거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동체 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 꿈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요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 자신의 법을 만들어서는 그 법에 따라 형제들과 하나님을 심판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형제들 사이에서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하여 마치 살아 있는 비난처럼 완고하게 서 있게 됩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꿈꾼 대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려고 행동합니다. 그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실패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그는 처음에는 형제들을 정죄하고, 그 후에는 하나님을 정죄하며, 마지막에는 절망에 빠져 자기 자신을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의 유일한 기초를 이미 놓아 주셨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훨씬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과 한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요, 선물을 받은 자로서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생활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아래, 하나님의 용서와 약속 아래 살아가는 형제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죄와 곤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축복 아래로 함께 나아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형제들을 주신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어떤 날에도, 심지어 곤경에 처한 힘든 날에도 그리스도인의 형제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측량할 수 없이 크지 않습니까? 죄와 오해가 공동생활을 침해하는 곳에서도, 죄를 지은 형제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 아래 함께 서 있는 형제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의 죄는 나에게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 아래서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새롭게 감사하게 하는 기회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에게 크게 실망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비할 수 없이 유익한 구원을 가져오는 시간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 시간은 나로 하여금 우리 모두가 결코 자신의 말과 행위를 근거로 살 수 없으며, 오직 우리를 진리 안에서 이어 주는 유일한 말씀, 유일한 행위에 의해서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의 용서에 의해서만 살 수 있음을 철저하게 가르쳐 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환영의 아침 안개가 걷히는 곳에 기독교 공동체의 밝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정현숙 옮김, <성도의 공동생활>(복있는 사람, 2021. 9. 6. 초판 11쇄 발행), 39-41.

 

======================================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로,

몽상(夢想)과 환영(幻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신 사랑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 신앙인의 마지막 언어는 오직 감사일 뿐,

부분적 감사가 아니라 전체를 꿰뚫는 온전한 감사일 뿐이다.

 

- 향린 목회 502일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