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18.
조심하는 태도는 ‘처음’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흔히 가만한 모습을 떠올리는 조심(操心)은, 그러므로 내부에 지향성을 지니며 이것은 어떤 정해진 기본을 향-한다. 건물의 기단(基壇)처럼 그것은 뻗어 올라가는 부재(部材)의 하중을 수용하고 그 무게중심을 견지해주는 토대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잘못 채워진 첫 단추처럼) 처음이 반드시 반듯하거나 옳은 게 아닐 수도 있기에, 조심은 그 자체로 처음이라는 개입의 무게와 함께 적잖은 비용을 치르기도 한다. 이론적 욕망이 더러 최초의 가설과 함께 몰락하듯이, 때늦은 조심은 처음의 설정과 얽힌 채 방향을 잃거나 이미 증상이 되어버린 자기보호의 기제가 되기도 한다.
처음을 되짚고 그 기억의 단계와 계기에서마다 조심하려는 태도는, 행위의 실수나 선입견의 오류 따위에 대처하려는 점에서 재부팅(rebooting)과 유사하긴 하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은 컴퓨터가 아니고 생각은 계산(computation)이 아니므로 이러한 조심 역시 재조심, 재재조심…… 하는 식으로 어느 불가능한 영점을 향해 소급해간다. 그렇더라도 사람 자신이 복잡, 치열한 과정의 개입(들)이므로 염결무오(廉潔無汚)한 신독(愼獨)의 자리를 얻을 도리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자기 편견 속에서 번연히 자족하며 어떻게든 현실적 존재의 퇴락을 막을 수는 없다. 마치 약속이라는 법적·관념적 (재)설정이 일상의 실천 속에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를 구제하거나 최소한 미봉하려는 것처럼, ‘모른다-모른다-모른다’는 마음의 자리를 얻는 일은 궁극적으로 일종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앎을 그 왜곡과 퇴락으로부터 구제하려는 애씀이다.
김영민 지음, <한국적 교양의 실패와 여자들의 공부론>(글항아리, 2025. 11. 17. 초판발행), 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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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만,
초심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닐 수 있기에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일이다.
줄타는 사람이 순간마다 균형을 잡듯이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치고 들어오는 온갖 개입을 조심히 맞아들여야 한다.
정신 차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그래서 익숙해질 무렵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모른다는 것!
숭산 스님의 “오직 모를 뿐!”이라는 그 한마디는
그래서 진리의 말씀이다.
날마다 모르니, 날로 새로울 수밖에!(日新, 日日新, 又日新!)
- 향린 목회 50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