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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아버지와 소

by phobbi posted Mar 17, 2026 Views 55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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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17

2026. 03. 17.

 

과묵한 성격에 자기표현을 잘 안 하시는 아버지는 속정은 깊지만 나와 살가운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입원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오래 갖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한우 꽃등심을 구워드렸습니다. 평소에 돼지고기만 드셔서 쇠고기는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쇠고기를 맛있게 잘 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버지, 쇠고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안 좋아하기는, 나도 좋은 건 다 안다. 그래도 소는 먹기가 좀 그려 .”

왜요?”

……

 

아버지의 말 없음에서 나는 많은 말을 읽어 냅니다. 아버지의 인생과 정서 가운데 소가 가진 무게를 상상합니다. 농경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에게 소는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소는 재산 가치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소와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생사를 같이한 전우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같기도 했습니다. 소는 말을 못 했지만, 아버지의 발소리를 듣고 반응했습니다. 아버지가 대문에 들어서면 앉아 있던 소가 벌떡 일어나 콧구멍에서 더운 김을 뿜으며 큰 눈망울로 아버지에게 애정을 표하는 걸 자주 봤습니다. 나는 소의 눈망울에서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가장 따뜻하고 깊은 우애를 보았습니다. 소에게 아버지를 향한 웅숭깊은 인격이 있었습니다.

 

~~

 

아버지는 소의 눈빛만 봐도 소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소가 앉고 일어서는 동작, 걸음걸이와 울음소리만 보고 들어도 소의 컨디션과 건강 상태를 알았습니다. 아버지와 소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소는 가족, 동지, 전우(戰友), 함부로 범해서는 안 되는 성역 같은 것이었습니다. 내밀하게 맺어진 인격적 관계, 아버지와 소의 관계는 그러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쇠고기는 맛있는 줄 알면서도 함부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세계와 사물과의 인격적 깊이를 잃어버렸습니다. 대량 생산된 일회용기들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가벼운 시대, 이 비인격적인 물성(物性)이 지배하는 키치(kitsch)의 시대에 쇠고기를 함부로 먹지 못하는 아버지가 불현듯 현자처럼 느껴집니다.

 

김선주 지음, <대신 울어주는 여자>(도서출판 등과 빛, 2025. 11. 01.),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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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우리집도 마찬가지였다.

동네에서 경운기를 가장 늦게 구입한 집이 우리집이었다.

남들이 경운기나 트랙터로 논과 밭을 갈 때,

아버지는 소를 데리고 가서 몇 배로 힘들게 일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나의 아버지도 소와 한 몸이었다.

 

겨우내 쉬던 소가 봄이 되어 다시 일을 하려면,

일종의 훈련을 시켜야 했다.

소에게 멍에를 씌우고,

쟁기 대신 끌 것을 매달아 돌을 싣거나 어린 내가 타고 동네 한바퀴씩 돌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정말 소의 눈망울은 그지없이 착하다.

그렇게 순한 친구가 없다.

쇠파리가 등에 앉아 연신 꼬리를 흔들어 쫓을 때,

소의 곁에 가서 등을 긁어 주면 그렇게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정성껏 소죽을 끓여서 먹인 덕에

언젠가는 우리 소가 가축 품평회에 출전해 도지사상을 탄 적도 있다.

경기도에서 가장 우수한 소로 등극한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큰 자랑이자 기쁨이셨을 것이다.

 

IMF를 겪으며 더는 소를 키울 수 없게 되었고,

아버지도 연세가 드셔서 예전처럼 농사하실 수 없지만,

여전히 고향집에 가면 예전에 쓰던 농기구가 가득하고,

소와 관련된 것들도 소중히 모셔 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아버지는 그것 하나하나에 본인의 인생과 추억이 묻어 있다며

하나도 버리질 못하신다.

필요도 없는 것을 여전히 켜켜이 쌓아두시는 아버지를,

한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 향린 목회 49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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