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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기도회

수요평화 "미지근한 곳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 유영상 | 2025-12-03

by 유영상 posted Mar 12, 2026 Views 10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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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2-03

251203 수요평화거리기도회 사회대개혁과 내란세력 척결

 

"미지근한 곳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요한계시록 3:14-22

 

 

1. 여는 말

 

1년 전 오늘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12월4일 새날청년회가 수요평화거리기도회를 주관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1년 전 오늘 윤석열은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기도회는 연기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 내란종식 1주년 맞아 다시 모였습니다. 내란종식 1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어 기쁘지만, 내란 세력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1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을 자주 발설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12월1일부터는 주춤하길래 그때 하늘뜻펴기 원고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늘뜻펴기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윤석열이 요즘 날마다 궤변을 늘어놓고 있어서 초점을 맞추기가 꽤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오늘은 윤석열이 쉬어 가는 날 같습니다.”

그로부터 1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의 탄핵 저지, 윤석열 경호인단의 체포 저지, 탄핵, 새로운 대통령 선출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현재 계엄 직전과 직후, 2,450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4,000을 돌파했습니다. 또 에이펙(APEC)을 개최하며 한국에 경제 호황과 AI 신사업의 급물살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 받습니다. 물론 미국의 관세 협상과 대미투자금 협상으로 애를 먹긴 했지만, 현재 언론에서 비추고 있는 대한민국은 아주 괜찮은 상태입니다.

 

 

2. 본문 주해

 

이와 비슷한 곳이 바로 라오디게아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당시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부자 도시였습니다. 대지진이 나도 황제의 원조를 거절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했고, 최고급 안약과 검은 양모,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17절에서 이런 라오디게아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 마치 끊임없는 재개발과 능력주의, 자본주의적 신제국주의 시대를 살고 있고 코스피 4,000 시대를 자랑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같습니다.

하지만 이 부유한 도시에도 치명적인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체적으로는 ‘양질의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는 로마 귀족들의 최고 휴양지였던 이웃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귀족들이 히에라폴리스에서 이미 좋은 물을 다 써버렸거나, 물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식어버려 정작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땐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계의 오랜 정설이었습니다. 그래서 15절의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은, 양질의 물조차 스스로 확보하지 못해 남이 쓰다 남은 미지근함에 갇혀버린 이 도시의 의존성과 영적 타락을 꾸짖는 것으로 오랫동안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교회 다니시면서, 나의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뜨거운 신앙으로 거듭날 것을 기도 제목으로 삼은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 이 합의를 뒤집는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에는 양질의 물이 풍부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온천수 또한 식지 않게 끌어올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이 있었습니다.

그 결정적 증거가 바로 도심에서 발굴된 4개의 대형 목욕탕입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씻기 싫은 미지근한 물만 졸졸 나오는 도시에 최고급 목욕탕을 4개나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겠습니까? 더구나 당시에는 뜨거운‘천연 온천수’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만약 라오디게아에서 나오는 온천수가 실제로 미지근해서 억지로 물을 끓여 썼다면, 까다로운 로마 귀족들의 발길은 진작 끊겼을 겁니다.

그럼 15-16절에서 말하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꾸지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목욕탕 은유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목욕탕은 지금과 다르게 온탕과 냉탕이 한 공간에 있는 게 아니라, 방으로 따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냉탕(프리지다리움) 공간 따로, 온탕(칼다리움) 공간 따로, 그 가운데에 냉탕과 온탕을 이어주고 몸을 온기에 적응시키는 미온실(테피다리움)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온실은 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몸을 적응시키는 역할과 온탕방과 냉탕방을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호화롭고 필요 이상의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또 노예 착취가 벌어지는 귀족 문화의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미지근한 너희들을 토하여 버리겠다. 차든지 뜨겁든지 해라”라는 꾸지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미지근하다는 건 미온실을 뜻합니다. 로마 귀족이 냉탕과 온탕을 즐기기 위해 목욕탕에 왔지 미온실에 있으려고 오지 않았겠지요. 요한계시록 저자가 보기에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미온실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냉탕과 온탕에 온 목적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처 없이 떠돌며 서성이는 사람 말입니다. 신앙의 목적을 잃은 자들이었습니다.

또 이들은 현실과 야합한 자들이었습니다. 냉탕, 온탕, 미온실에서는 노예들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온탕에서는 주인에게 물을 나르고, 실신하지 마라고 찬물을 수시로 얼굴에 뿌려줘야 했으며, 냉탕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마라고 수건으로 몸을 잘 닦아 줘야 했고, 간식을 날라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 미온실에서의 노동이 가장 불편하고 짜증났습니다. 오일을 바르는 노동, 떼를 벗기는 노동, 귀족과 가장 가깝게 붙어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소위 갑질, 성희롱, 성착취, 감정 노동에 취약한 노동이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목욕탕에 출입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자들을 규탄한 것입니다.

그 노동을 하는 이들이 누구였겠습니까? 같은 교회에서 만나는 신자가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거주민 중 30%가 노예였다고 추정되는데, 당시 교회가 사회의 계층 구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추정하기에 그 확률을 무시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착취 당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자들과 착취를 애써 외면하며 세상과 야합하는 이들이 같은 교회에 속해 있었던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연합을 이루는 사랑을 잃은 채 말입니다. 당시 그리스도교가 노예 제도의 폐지를 말하진 않았지만, 교회 안에서는 계층 간 구별 없이 연합하는 사랑을 말했기에 이것은 매우 위선적으로 보였을 겁니다.

우리의 삶이 착취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안락할 때 누군가는 호황의 톱니바퀴 아래서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신앙에서 나태한 우리, 그것만으로 표현하기 부족한 야합과 절충, 중립, 안주. 이 현실을 부유함에 취해 집단적으로 망각한 라오디게아 도시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3. 주제 해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내란 직후, 우리가 광장에 나갔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대의, 우리가 세우려던 정치는 무엇이었으며, 지금 그것을 잊게 만든 ‘미지근한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물론 경제 살리기, 중요합니다. 코스피 지수 올리고 에이펙(APEC)도 잘 치러야지요. 세계적인 행사인데 잼버리처럼 망쳐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코스피 5천 신화’와 ‘AI 붐’이라는 환상에 젖어,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미완의 과제들을 잊은 듯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야성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아니 현실과 야합하여 지탄받았던 라오디게아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온 나라가 ‘경제적 복음’에 취해 맘 편히 쉬고 있을 때, 국민의힘 추경호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내란 세력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뒤집으려 했던 자들이 여전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정치적 미래를 구상하는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은 과연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무엇을 해야합니까?

요한계시록 3장20절은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문을 열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는 종말론적 해방이 절실하다고 말입니다. 그 누구도 소진되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해방 말입니다. 예수께서 닫힌 문을 두드려 열게 하셨듯, 우리도 착취와 위선으로 닫힌 ‘라오디게아 목욕탕’ 같은 대한민국 사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합니다. 그 밀실에서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주인많은 이들이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향락을 즐기는 저 위선적인 신앙을 씻어내야 합니다.

이 이유로 우리는 이곳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늘 분주하게 깃발을 들고 현장을 찾으며 신앙인으로서 소임을 다 하는 모습을 교회 텔레그램 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내란 이후 탄핵 집회에서는 ‘교회가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시대의 탄식에 ‘교회는 이래야 한다’를 말했습니다. 탄핵커피, 쉼터, 탄핵축하떡 등 여러 추억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불신앙과 망각, 야합의 상징인 이 사회의 문을 열고 그리스도의 식탁을 차리기 위해 힘썼습니다. 우리가 애쓴 지난날들이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아직 내란 세력이 처벌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사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4. 닫는 말

 

교우 여러분, 화려한 경제 지표 뒤에 여러 겹으로 가려진 미완의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했다가 부당한 전보와 해임 통보를 받은 지혜복 교사, 노조 탄압과 불법 해고에 맞서 싸우는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 무리한 미등록 이주민 단속으로 추락해 사망한 뚜안 님, 이동할 권리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투쟁하는 장애인 인권 운동, 그리고 학생인권법과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우리는 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내란 세력 처벌, 시급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단지 몇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란과 연루된 우리 안의 지나친 욕망을 직시하고, 괴물을 탄생시킨 사회적 모순들과 연대하여 싸울 때 가능합니다. 사회대개혁은 바로 이 연대의 물결 속에서 완성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굴려야 할 역사의 수레바퀴는, 더 이상 누군가의 눈물과 시체를 연료로 사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자리만 맴도는 쳇바퀴가 아니기를 빕니다. 단지 그 누군가를 소진시키고 갈아 넣는 야만의 바퀴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경제 발전 신화에 묻혀 정의가 지연되고 유보되는 이 미지근한 세상에서, 서성이지 마십시오. 내란을 탄생시킨 저 미지근한 욕망에 연루되지 말고, 신앙의 목적을 찾아 망각과 야합을 털어내십시오. 대신,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는 ‘그리스도의 수레바퀴’에 기꺼이 연루되십시오. 그리하여 이 내란을 종식시키고 사회대개혁을 앞당기는, 뜨겁고도 정의로운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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