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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기도회

수요평화 "그날이 오면" | 유영상 | 2023-10-11

by 유영상 posted Mar 12, 2026 Views 8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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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10-11

231011 수요평화거리기도회

 

"그날이 오면"

이사야서 27:1-5

 

 

1. 들어가며

 

하나님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 가운데 깃들길 빕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 작은 땅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파견했고, 각국의 지지 선언과 개입 선언이 엇갈리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그리고 이 장소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외치는 것이 때로는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그분의 은총으로 이 땅에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주석: 이사야서 27장1~5절

 

오늘 읽은 이사야서 말씀은 ‘화친’과 ‘평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특히 5절은 하나님의 평화가 완수되기 위해 이루어야 할 과제로 ‘화친할 것’을 명령합니다. 여기서 ‘화친’은 히브리어로 우리에게 익숙한 ‘샬롬(Shalom)’입니다. ‘샬롬하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할 수 있으니, ‘화친하라’는 ‘샬롬을 이루라’ 혹은 ‘샬롬을 행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라는 하나님의 요청은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잊고 있던 많은 숙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요청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그들의 대적인 ‘찔레와 가시덤불’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너희가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길 원한다면, 나와 화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평화의 시작과 과제가 압제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압제하는 세력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찔레와 가시덤불’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제국들, 즉 이사야 23장의 두로, 25장의 모압, 그리고 역사 속의 바빌론과 페르시아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제국의 형상은 27장 1절에서 ‘리워야단(레비아탄)’으로 집약됩니다. 욥기 41장에 상세히 묘사된 리워야단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모든 것을 우습게 여기며 왕 노릇 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강력한 힘으로 군림하는 제국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즉, 리워야단은 역사를 반복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해 온 제국의 표상이자, 샬롬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 리워야단을 처치하실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아름다운 포도원’과 같은 샬롬의 지평으로 초대하십니다. 3~4절에 따르면, 이 포도나무는 어떤 침략도 받지 않습니다. 밤낮으로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찔레와 가시덤불’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평화는 “그날”에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그날”은 제국의 상징인 리워야단이 죽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이사야의 이러한 종말론적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새 시대를 갈망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난점이 있습니다. 샬롬의 마당을 여는 새 시대가 이스라엘의 능동적인 투쟁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던 이들이 내미는 ‘화친 제안’을 통해 완수된다는 점입니다. 5절은 대적들에게 보호받고 싶다면 먼저 화친을 제안하라고 말합니다. 샬롬의 적이었던 이들이 평화를 이루는 과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은 언뜻 의아하게 들립니다.

본문이 말하는 평화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이스라엘 민중의 물리적 힘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 주도권을 대적들에게 맡기시는 듯 보입니다. 이는 불안해 보일 수 있으나, 이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평화가 상호 합의에 의한 쌍방의 호흡이라면, 대적들도 평화를 건네야 합니다. 그러나 대적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착취하던 이들의 신(神)에게 먼저 평화를 청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권력과 우월감을 스스로 내려놓는 ‘굴욕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곧 자신들이 자행해 온 정복과 착취가 잘못되었음을 자인하는 징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5절의 ‘보호하다’라는 단어에서 더욱 강화됩니다. 히브리어 ‘하자크(Hazaq)’는 보통 ‘의지하다’, ‘붙잡다’, ‘완고하다’ 등으로 번역됩니다. 출애굽기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과 교류하는 이들에게는 ‘해방의 지팡이’가 되지만,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완악함’을 의미하여 결국 그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양가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평화는 노골적으로 편향적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해방의 원천이 되지만, 압제자들에게는 그들의 완악함을 드러내어 스스로 넘어지게 만드는 함정이 됩니다. 이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는 평화가 아니라, 폭력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자들을 낮추고, 그들이 스스로의 완악함 때문에 멸망할 때 비로소 완수되는 평화입니다.

결국 이사야가 전하는 평화는 리워야단처럼 힘의 논리를 앞세우던 이들이 그 힘의 무용함과 허구성을 스스로 폭로하고 손을 내미는 ‘자멸의 평화’입니다. "전쟁으로 쌓아 올린 빌딩과 자본이 사실은 텅 비어 있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실토할 때, 이스라엘이 고대하는 “그날”은 비로소 완됩니다.

 

 

3. 우리의 평화 논리

 

지난 주일에는 홍근수 목사님 10주기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그분이 평생 헌신하신 평화통일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의 정신을 되새겼습니다. 목사님께서 2002년 신효순·심미선 양 49재 때 발표하신 ‘이 지상에 존재하는 희한한 나라’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상한 나라가 두 개 있다” 어떤 나라입니까? 바로 미국과 한국입니다. 미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통해 평화를 이루려 한다는 점에서 희한합니다. 타자를 짓밟는 정복의 논리가 그들에게는 이익과 부흥을 담보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채 평화도 번영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불행해서 희한한’ 나라입니다. 자국민이 미군 장갑차에 목숨을 잃어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허구의 평화입니다.

이러한 군사 논리 속에서는 오직 힘만이 강조됩니다. "사드를 설치해야 한다", "아이언돔이 필요하다", "항공모함을 보유해야 한다"라는 말이 타당하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9월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군대의 위용을 과시하며 ‘힘에 의한 안보’를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샬롬을 꿈꾸는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고대하는 평화가 군대로부터 오는 것인가?”

현재 우리 사회는 군대의 정서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군사화된 사회는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근거로 현재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통제합니다. 또한, 국가를 지킬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며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차별을 공고히 합니다. 이러한 논리 위에서 평화를 생각하다 보니, "응징이 곧 평화다"라는 폭력적인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입니다.

 

 

4. 나가며

 

예언자 이사야가 전한 ‘화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국이 스스로의 무력감을 고백하는 굴욕의 선언이자 "우리의 평화는 틀렸다"라는 자기 폭로입니다. 전쟁으로 쌓은 평화는 그 완악함으로 인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희한한 나라’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된 화친이 맺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승리하는 그날을 고대하며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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