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부를 태워 올리는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 가운데서 짐승을 잡아서 나 주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소나 양을 제물로 바쳐라. 바치는 제물이 소를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서 회막 어귀에서 바치되, 나 주가 그것을 기꺼이 받게 하여라.” (레위기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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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가 성막을 완공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레위기는 그 완성된 성막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시작됩니다. 본문 1절의 “부르시고(와이크라)”는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을 친밀한 사귐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미슈칸)보다 만남의 천막(오헬 모에드)이라는 표현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미슈칸 4회, 오헬 모에드 43회). 이는 하나님이 홀로 거룩하게 격리되어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백성들의 일상 한복판에서 그들과 소통하기를 갈망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은 규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거룩함에 접속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친절한 ‘만남의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장은 번제를 드리는 장면인데, 번제물로 소, 양, 염소, 심지어 산비둘기까지 허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줍니다. 제사의 본질은 제물의 시장 가치에 있지 않고, 예배자의 ‘경제적 형편’과 ‘진정성 있는 마음’에 있습니다. 누구든 소외됨 없이 당신 앞에 나오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떤 문턱도 낮추고 모든 이를 환대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제물을 가져온 이가 직접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안수)는 단순한 의식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이 제물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고백이며, 나의 죄와 생명을 제물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번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Olah)’는 ‘위로 올라간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제물을 남김없이 태워 연기로 올려보내는 것은, 나의 자아와 욕망을 온전히 소멸시켜 하나님의 향기로 승화시키겠다는 철저한 자기 비움(Kenosis)의 표현입니다. 결국 번제단 위에서 타오르는 것은 짐승의 고기가 아니라, 예배하는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레위기의 번제는 우리의 예배가 자기의 욕망이나 고집, 교만을 태워 드리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배는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욕망을 성취하려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나를 온전히 비워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감을 고백하며 그 사랑에 감사하여 주님을 예배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예배가 되게 하시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배할 때 정성을 들이고 나를 비우고 헌신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