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10.
내가 이 영화에서 거슬렸던 점은 폭력의 수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해 사제로서 나는 이 정도 강도의 고통–특히 더 끔찍한 정신적 유형–에 관해서는 너무나 자주 들어 왔기에 스크린에서 고통과 피를 마주하더라도 실신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거슬렸던 것은 그 영화에 담긴 그리스도론적 이단이었다. 바로 우리 주님의 구원 행위가 영웅적 인간의 행위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고통을 탁월하게 견디고 악마와의 싸움에서 수없이 녹다운되면서도 다시 일어나 마침내 승리자의 연단에 당당히 올라서는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챔피언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 주님의 승리와 부활은 앞부분에서 분노하여 자신의 가발을 벗어 던지는 악마의 좌절로 암시되며, 마침내 시신이 꿈쩍이더니 수의를 접어 두고 걸어 나오는 지극히 평범한 부활 이미지로 표현된다. 그리고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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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류의 영화들은 일종의 설교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설교란 성경 본문과 우리의 세상 경험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설교는 성경과 우리 삶이 서로를 해석하는 ‘해석학적 연결 고리’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파스카 메시지의 무엇이 남아 있는가? 피범벅과 모든 것을 견뎌 내는 영웅이 있고, 결말에는 소생한 육신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폭력이 넘쳐 나는 우리 세상을 위해서는 무슨 전망을 제시하는가?
토마시 할리크 지음/최문희 옮김, <고해 사제의 밤>(분도출판사, 2021. 3. 25.), 194,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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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한복판을 보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그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기간이다.
이 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할리크 신부님의 지적처럼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너무나 왜곡된 채
또는 너무나 수박 겉핥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맬 깁슨의 영화가 예수를 한낱 영웅적 인간을 묘사하는데 머물고 만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이 이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 아닐까?
예수가 채찍을 맞으시며 십자가라는 당대 최악의 형벌,
최고로 잔인한 형벌에 자기를 맡기기까지 이루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할리크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할리우드 영웅이 아니다. 그분은 고통의 화형대의 챔피언이 아니다. 그분의 부활은 카메라 렌즈로 포착될 수 없다. 부활은 훨씬 더 깊은 차원, 희망이라 불리는 실재의 그 파괴할 수 없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 향린 목회 49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