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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신자유주의적 행복장치에 속지 말 것

by phobbi posted Mar 09, 2026 Views 53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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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09

2026. 03. 09.

 

행복장치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사회의 탈정치화와 탈연대화를 초래한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된다. 고통 또한 개인적인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사이에 우리는 사회적 불화를 낳는 사회적 연관을 시야에서 놓치고 만다.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를 괴롭힐 때, 우리는 그 책임이 사회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함께 느끼는 고통이야말로 혁명의 효소다. 신자유주의적 행복장치는 이런 고통의 싹을 질식시킨다. 진통사회는 고통을 의학적 문제로, 사적인 문제로 만들어 탈정치화한다. 이를 통해 고통의 사회적 차원을 억압하고 은폐한다. 피로사회의 병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만성적인 고통은 어떤 항의도 낳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에서의 피로는 나의 피로로 간주되고, 이런 점에서 비정치적이다. 이 피로는 혹사된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피로는 사람들을 하나의 우리로 결합하지 않고 오히려 개별화한다. 그러므로 이 피로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피로와 구별되어야 한다. 나의 피로는 혁명을 막는 최상의 예방약이다.

 

신자유주의적 행복장치는 행복을 사물화한다. 하지만 사실 행복은 더 큰 성과를 약속하는 긍정적 감정들의 합계 이상의 것이다. 행복은 최적화 논리를 거부한다. 행복의 특징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부정성이 내재한다. 진정한 행복은 균열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고통이야말로 행복이 사물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고통은 행복에 지속성을 부여해 준다. 고통이 행복을 지탱한다. 고통스러운 행복이란 말은 형용 모순이 아니다. 모든 강렬함은 고통스럽다. 격정은 고통과 행복을 결합한다. 깊은 행복은 괴로움의 계기를 지니고 있다.

 

한병철 지음/이재영 옮김, <고통 없는 사회>(김영사, 2021. 4. 15. 11쇄 발행),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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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소소한 개인의 행복을 원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일이다.

삶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평탄한 길도 있고 거칠고 힘들게 걸어야 하는 길도 있다.

이 양면 모두를 묵묵히 걸어가야지, 어느 한쪽만 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행복에는 언제나 불행이라는 쌍둥이 자매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실 둘이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의 말대로 사적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결과는 결국 우울증이다.

함께 느끼는 고통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투지와 행위가

오히려 진하고 깊은 행복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 향린 목회 49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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