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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마음의 부패와 석연치 않은 선

by phobbi posted Mar 06, 2026 Views 51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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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06

2026. 03. 06.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확신을 기초로 세워진 유교도 마음의 부패를 알고 있었고, 기독교는 원죄를 말할 정도로 인간 본성의 부패를 심각하게 본다. 마음의 부패는 인식의 부패를 낳는다. 사람들이 선으로 인식하는 것도 사실상 악에 오염된 선에 불과하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확신 속에 위선(僞善) 곧 거짓 선이 들어 있다. 악한 사람을 비난하고 세상의 악을 한탄하는 사람의 마음도 악에서 멀지 않다. 일상에서 악과 상대하는 선은 석연치 않은 선이다. 그래서 세상이 혼란스럽다. 마음이 문제이니,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지극한 선과 최고선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성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다.

 

선에 섞여 있는 악이란 악을 비판하는 마음에 따라다니는 악감정을 가리킨다. 감정이 의지를 이끌어 행위가 생겨나기 때문에 악감정은 악의 씨앗이다. 윤리학에서는 동기의 문제로 본다. 유교가 찾는 순수한 선과 칸트의 순수이성 그리고 기독교의 최고선은 모두 동기까지 선한 것을 가리킨다. 물론 겉으로나마 정의가 불의보다 낫고 도덕적인 것이 부도덕한 것보다 낫다. 그러나 동기가 불순하거나 증오심이라는 악감정이 수반되면 정의에도 악의 씨앗이 살아 움직인다. 심판대에 선 사람에 대한 군중의 인격모독은 심리적 살기(殺氣)로서 정의를 부당한 폭력으로 만든다.

 

감정은 순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악을 비판하고 징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악감정은 인간의 힘으로 절제하기 어렵다. 유교가 개인의 내면을 살피기 위해 심학(心學)을 발전시키고, 존심양성(存心養性)과 계천입극(繼天立極)과 같은 지극한 수양론을 발전시킨 까닭이 거기에 있다. 유교의 수양론은 결국 이성의 힘으로 악감정을 억제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유학과 같은 시대의 그리스 인문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한 선을 본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습관으로 완성시킨다”(니코마코스 윤리학, 110a, 25)고 했는데, 유교가 추구한 존심양성의 수양론과 비슷하다. 동서양 인문주의자들이 생각한 도덕과 윤리는 일반적인 선이 아니라 최고선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같고, 그 과정에서 내면의 수양을 중시한 점도 같다.

 

유교와 그리스 인문주의가 사람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꾸려 했다면, 기독교는 세상의 변화와 사람의 변화는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순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사람이 변해야 세상이 변하겠지만,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사람이 바뀌기 어렵다. 사람은 세상의 영향을 받는데, 세상은 개인의 합이 아니며, 전체는 전체로서 돌아가는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세상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인문주의와 기독교의 차이가 여기에 있고, 구조 악을 바꾸려는 다양한 사회정의 이론들이 기독교 문화권에서 나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독교 역시 사람이 새로워져야 함을 중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세상이 바뀌어야 사람이 바뀌지만, 역으로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도 중요한 진실이다. 구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여전히 구원을 위한 중요한 길이다.

 

기독교가 죄의식을 중시하고 마음의 회개를 촉구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기독교의 죄의식은 전심으로 내면을 살피는(專用心於內) 유교의 성찰(논어, 학이, 3)보다 악의 힘을 더 크게 느끼고, 악을 이길 선의 도움을 더 절실하게 느낀다. 앞에서 말한 무한책임도 기독교적 회개의 영성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죄의식과 회개는 일상적인 선악의 인식과 정의 속에도 악이 있음을 알게 되는 인식의 대전환이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악을 이기는 선의 길로 접어드는 마음의 전환을 의미한다.

 

양명수,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랑과 정의, 기독교사상 2026. 03. 통권 807(대한기독교서회, 2026. 03. 01.), 15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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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글이 나오거나 책이 나올 경우에 무조건 믿고 읽고 사서 보는 분들이 있다.

양명수 교수님도 그중의 한 분이다.

기독교 사상에 유교와 기독교 시리즈를 두 번째로 연재하신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이고, 역시 글이 정말 좋다.

배울 것이 정말 많고, 오래도록 깊이 공부하신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

 

마음의 부패가 인식의 부패를 가져오고,

악과 상대하는 선이 석연치 않은 선이라는 말씀,

악을 비판하는 마음에 따라붙는 악감정의 문제,

감정을 다루기 위한 여러 고민과

사람과 세상 사이의 물리고 엮이는 관계들 속에서

인간 실존의 내면과 사회적 구조를 동시에 붙잡으려는 지혜가 짧은 문장 속에 다 녹아 있다.

 

마음에 새기고 나 또한 깊이 살피며

오늘도 하루를 연다.

 

- 향린 목회 48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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